반응형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한 게 1998년 5월의 일이었으니 벌써 햇수로 15년을 넘긴 셈입니다. 신혼시절 늘상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먹고 살기도 힘든 데 우린 애기 낳지 말고 둘이서만 좋은 거 먹고 여행다니며 편히 살자"였는데, 어찌어찌 살다 보니 어느새 생때같은 자식을 셋이나 두게 되었네요. 그것도 딸만 셋….

세월을 이겨내는 장사는 없다고 했습니다. 신접살림으로 마련한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기만 해도 아내와 함께 눕고 싶었던 침대는 언제부터인가 집안에서 사라졌고, 화장대를 잃어버린 아내의 갈 곳 없는 화장품들은 책장 한 칸에 의탁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TV는 2~3년 전에 없애고 부모님이 쓰시던 자그마한 중고를 들여놨었는데, 얼마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올 때 현대HCN충북방송이 공짜로 내어준 23인치 LG 스마트TV로 교체했습니다. 뭐라더라? 장기가입고객에게만 제공하는 아~주 특별한 혜택이라던가?

센서 수명이 다 된 탓이었는지 냉수 쪽 흡입구로만 급수가 가능했던, 그나마 동작 중에는 손으로 일일이 수도꼭지를 여닫아야만 했던 세탁기도 이번에 이사올 때 15Kg짜리로 바꿔버렸습니다. 세탁기 근처에서 탈수가 끝날 때까지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어야 하는 것도 차마 못할 짓이더이다.

비디오 플레이어는 이미 오래 전에 CD플레이어로 교체했는데, 지금은 그나마도 라디오 청취만 가능해졌으니 갑갑할 따름입니다. 결혼식 비디오 테이프도 새로이 CD에 담던가, 아니면 재생할 수 있는 동영상 파일로 전환시키마 그토록 벼렸었는데 여지껏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게으름을 어찌 해야 할까요?

아! 이번에 이사올 때 가장 큰 보물이자 애물단지였던 장롱도 키낮은 장롱으로 바꿔야만 했습니다. 지금 사는 아파트가 처음 지어졌을 때 난방 수단이 연탄보일러였던지라 신발을 벗어놓는 맨바닥과 주거바닥과의 높이가 꽤 되더랍니다. 그런 탓에 천장과의 높이가 그만큼 낮아지게 되었고, 지금껏 사용해 온 장롱은 밑둥치가 잘리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더랍니다. 그러니 어쩔 도리 있나요?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한쪽에 쌓아놓고 철수하기 전에 대체할 수 있는 장롱을 구입할 수밖에요.

그 외에도 서랍장이며, 식기며, 이불이며, 옷이며, 온갖 살림살이가 이미 버려졌거나 부서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기사 여상 교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던 8년 연하의 취업반 소녀가 이제는 동네 무서운 것 없는 펑퍼짐한 아줌마가 되어 있고, 나름 괜찮았던 인기 청년은 머리숱이 점점 사라지는 배불뚝이 중년이 되어 있으니 그럴 만도 할 테지요.

자신의 건재함을 언제까지라도 과시하려는 듯 '윙~' 소리내며 돌아가는 냉장고도 얼마 안 있어 거실을 내어줘야 할 겁니다. 가끔 듣게 되는 아내의 앓는 소리가 얼핏 저 오래된 냉장고 소리와 닮은 것도 같습니다. 어이, 여보 마누라! 내 다른 거 다 바꿔도 당신만은 오래도록 수리해가며 쓸 테니까 우리 세 딸을 생각해서라도 더이상 아프지 말라고. 언제까지나 무조건 건강해만 달라고. 알간, 모르간?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