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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리뷰로 정리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에 대한 감흥을 몇 시간, 또는 며칠이 지나도록 간직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대충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 기록하는 것이기에 남다른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그동안 관람했던 영화를 후기로 남긴 경우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연히 보게 된 한 편의 영화는 그런 생각을 비웃기나 하듯 자판으로 손을 이끌었습니다.

공포와 긴장,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화면 가득 피빛 전율이 너울댔습니다. 마치 실재하고 있기나 한 것처럼 코끝에서는 역한 피비린내까지 맡아지더랍니다. 하시라도 그 역겨운 느낌을 떨쳐내지 못할 경우엔 일상생활에까지 두고두고 영향이 미치게 될 것 같다는….

그러니 어차피 떨쳐내야 할 쓰잘머리 없는 것이라면 액땜하는 셈치고 이렇게 포스팅이나마 해야 할밖에요.

사실 불탄은 공포, 호러, 스릴러 등과 같은 장르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잔인하거나 괴기스러운 장면을 별로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껏 이런 류의 영화를 관람할 기회가 있다손 치더라도 애써 피해왔던 것도 사실이고요.

음…, 그때가 언제였을까요? 아! 결혼을 했던 1998년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무더웠던 여름 날, 직장 후배가 더위를 한방에 날려보낼 수 있는 영화라며 검정색 비닐 봉투에 담아 온 것이 바로 '떼시스'라는 제목의 비디오 테이프였습니다. 그 후배,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공포스러울 테니 만반의 준비를 해두라며 어찌나 너스레를 떨어대던지….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탄의 속은 토를 하고 싶은 맹렬한 기세에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허나 차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는 없었지요. 결국 끝까지 보기는 했습니다만, 이후부터는 그런 장르의 영화를 두 번 다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귀신이 씌였는지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Midnight Meat Train)'을 보고 말았습니다. 얼핏 본 제목 탓에 밤기차에서 벌어지는 숨가쁜 액션영화인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 지하철 승강장에서 심야열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살인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살인이 일어나는 새벽 두시의 심야 지하철,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피빛 향연, 사진을 찍어 매체에 파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결국 사건에 연루돼 살인마의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가혹한 운명, 그리고… 갑자기, 느닷없이, 뜬금없이, 허망하게, 황당하게 빠져드는 삼·천·포 스토리.


▲ 새벽 두시 공육분, 심야지하철에서 살인대상을 기다리고 있는 살인마


중간중간 비치는 도축장에서나 있을 법한 시신 해체작업, 그것도 심야의 지하철에서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설정은 충격일 수박에 없습니다. 그것도 지하철 기관사와 해당 지역 경찰관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


▲ 미행을 하던 주인공(레온)과 살인마가 처음으로 조우하는 장면


찌질한 주인공은 살인마의 마수로부터 잘도 도망 다닙니다. 아니, 왠일인지 살인마는 주인공을 살해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어? 왜 죽이지 않는 거지?'라는 의문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져만 갑니다. 오히려 주인공에 죽게 되는 순간에 "환영한다"는 말을 남깁니다. 왜 그래야만 했던 걸까요?

살인마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오던 살인과 시신 해체작업을 주인공에게 맡기려 했던 것입니다. 즉, 일찌감치부터 주인공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어 놨기 때문에 죽일 이유가 없엇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관객들은 살인마가 주인공에게 왜 방어적인 공격만 했는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 주인공 레온의 카메라를 되찾기 위해 살인마의 호텔에 숨어든 주인공의 애인 마야


그렇다면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살인마는 왜 원치 않는 살인을 해 온 것이며, 해체작업을 해야만 했던 걸까요?

그것은 바로 이미 100년 전부터 살인과 해체작업이 있어 왔고, 그 같은 일은 인류 탄생과 함께 이어 온 괴생명체들에게 먹잇감을 조달하기 위해서라는 설정에 있었습니다.  일순 긴장감은 모두 사라지고, 그 대신 황당함과 허망함만 잔뜩 안게 되는 대목입니다. 지금껏 고무줄처럼 팽팽하던 긴장감을 가위로 싹뚝 잘라버린 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주인공과 엇비슷한 비중을 가진 주인공의 애인이 소위 괴생명체의 먹잇감으로 무력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실소를 넘어 하품까지 나오게 하더랍니다.


▲ 살인마와 살인마집단, 그리고 괴생명체의 존재를 알고 있는 해당사건 담당경찰관


아무래도 일본인 감독 특유의 설정 때문일까요? 아니면 영화 '떼시스'의 잔혹함이 동양적 정서에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요? 불탄의 생각에는 시민이 이용하는 심야 지하철을 살인현장으로, 시신을 해체하는 인간 도축장으로 사용한다는 설정부터가 스토리의 빈약함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방송인 김생민이 진행하는 영화소개 코너에서 어찌나 좋게 포장을 하던지…. 그 때문에 조금이나마 기대를 갖고 보았지만, 결국 킬링타임용으로도 너무나 부족한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런 장르의 영화에 열광하는 매니아만 아니라면…. - By 불탄 090906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