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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기님들, 그리고 모든 선·후배님들, 반갑고 고맙습니다. 청주에서 딸 셋을 키우고 있는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 졸업생 불탄입니다.

이제서야 아주대 졸업생의 이름으로 어제였던 7월 19일의 시국선언 전문을 읽어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저마다의 바쁜 생활 중에도 목소리를 내 주신 님들에 대한 고마움에 가슴이 먹먹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유린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보듬고, 정치적 쿠데타의 불편부당함 알리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님들으로 하여 자그맣게나마 희망이란 걸 가져 보게 됩니다.

시국선언문을 몇 번이나 읽어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1987년의 어느 날로 되돌아 간 느낌이었습니다. 노태우의 6.29항복선언에 들뜬 기분으로 우리 몇몇은 종로 보신각에 위치한 '이층집(술집 이름입니다)'을 찾았고, 그곳에서 우리는 소주와 막걸리를 나누면서도 목이 터져라 석탄가를 부르며 탄식을 했고, 동지가를 부르며 울음을 보였고, 출정가를 부루며 투쟁을 약속했지요.

뭐, 어쨌든 그건 그렇다 치고 지난 19일에 있었던 아주대학교 졸업생들의 시국선언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대학교 시국선언 페이스북 계정 캡쳐 이미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민주주의 쟁취의 역사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대해 반독재투쟁으로 맞섰고, 516쿠데타와 뒤이은 군사독재에도 쉼 없이 저항했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과 87년 6월항쟁으로 대표되는 반독재 민주투쟁은 지식인, 학생, 노동자, 농민 그리고 시민들의 희생과 열정이었다. 그 치열한 싸움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를 획득하였고, 대의민주체제를 이루어내었다.

우리 국민이 정권과 맞서는 동안, 국가기관은 정권의 편에 서서 그 저항을 탄압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으로 얻어낸 민주주의라는 열매는, 국가기관에도 공평하게 돌아갔다. 관료사회가 더욱 전문적인 힘을 얻게 되었고, 우리는 때로는 애정 담긴 비판을 하기도 하며 그들을 인정해 주었다.

그런 국가기관이 국민을 우롱하고,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파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2012년 12월에 실시된 18대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이 특정 후보에 대한 여론을 호도하는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전 국정원장 원세훈의 지시하에 여당후보에 유리하고 야당후보에게 불리한 댓글을 조직적으로 작성하는 소위 ‘댓글부대’를 운영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활동의 단서를 포착한 야당과 선거관리위원회의 정상적인 조치에 대해 ‘국정원 여성 직원에 대한 인권유린’, ‘폭력’, ‘감금’ 등의 단어를 쏟아내며 적반하장으로 공격하였고, 여당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그 후의 상황은 더욱 어처구니없게 흘러갔다. 사건을 수사해야 할 경찰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대선후보 3차 토론회가 끝난 직후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허위사실을 발표했다. 사용된 PC의 기록을 지우는 증거인멸도 마다치 않았다. 검찰은 원세훈, 김용판 등 총 5명은 불구속기소로, 그 외의 관련자들은 기소유예로 처리함으로써 사실상 범죄를 수사할 의지가 없음을 표명했다. 국가정보원은 오히려 이 사건을 내부 고발한 직원을 파면했다.

그리고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새누리당이 제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당시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을 공개했다. 대화록 공개가 위법임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정보원이 대화록을 임의로 조작했다는 증거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국가기관이 집권여당의 이익을 위해 초법적인 행위를 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 할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하여 헌정질서를 어지럽히고, 국가의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해야 할 경찰은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고 허위 발표를 자행했다. 사법정의를 구현해야 할 검찰과 법무부는 원세훈, 김용판 이하 범죄자들에게 합당한 기소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이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셀프 개혁’이라는 조소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당사자로서 이러한 상황에 깊은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87년 6월항쟁을 통해 얻어낸 제6공화국의 헌법은, 민주주의의 계승 발전과 국회를 통한 대의민주주의, 그리고 직접선거를 명시하고 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는 과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이다.

결국, 이 사건은 집권 여당과 일부 국가기관의 고위관료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사건이다. 이번 사건이 유야무야 된다면, 대한민국의 선거는 일부 관료 혹은 엘리트들이 원하는 후보를 국민이 통과시키는 요식행위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주인이자, 21세기 세계시민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침묵의 동조자’가 될 것인가,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인가? 이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고자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국가정보원은 이 사건의 최초당사자로서, 선거에 개입하고 여론을 호도한 불법적인 행위를 낱낱이 자백하라.

1. 검찰 및 수사당국은 법률이 정한 기관의 명예를 걸고, 어떠한 은폐나 축소, 조작 없이 이번 사건의 실체를 국민 앞에 밝혀라.

1. 사법부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이번 사건의 모든 관련자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라.

1. 18대 대선의 모든 과정에 책임이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에서 심각한 민주주의의 침해사건이 국가기관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

1. 18대 대선을 통해 당선되었고 현 정권의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 상황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관료사회에 대한 시민의 감시를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국민에게 보고할 것을 약속하라.


2013년 7월 19일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아주대학교 졸업생 일동 (이하 내용은 시국선언 참가자 335명의 명단 게재)



다들 어디서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국선언에 서명한 335명의 명단 중에는 불탄의 동기도 있더랍니다. 참으로 반가운 이름이요, 너무나 고마운 친구입니다.

보수(라고 쓰고 수꼴이라 읽습니다) 일간지(라고 쓰고 찌라시라고 읽습니다)들은 지금의 촛불이 2008년과는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때보다 훨씬 강력한 명분과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레 겁을 집어먹은 그들이 막무가내로 배설해 낸 뻘짓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그네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 한탄했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마침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친일과 매국을 진실로 쪽팔려 하는 세상, 우리 힘으로 기필코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시작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