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본 포스트는 '우리사회연구소'가 GH정권  6개월을 진단, 평가한 정치기획 '유신이 재림했던 박근혜 정권 6개월 ②'을 옮겨 적은 글입니다. 모든 이미지와 컨텐츠의 저작권은 우리사회연구소(김성훈 상임연구원)에게 있습니다.


출처 - 채널A 아침뉴스 캡쳐, ⓒ우리사회연구소


2012년 대통령 선거가 국정원 · 경찰 등 공권력이 동원된 부정선거였음이 점차 명확해지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비서실장에 김기춘을 기용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김기춘은 1974년부터 79년까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부장으로 유신 독재 정권에 적극 부역하였으며, 1992년에는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의 당사자로 당시 대통령선거에서 정치공작을 자행했던 인물이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8월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민주주의를 훼손했던 당사자가 나섰으니 야당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린 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8월 5일, 트위터를 통해 “유신공안의 추억? 한여름 납량특집 인사? 국정원국조 물타기 인사?...소름 끼치네요”라고 질타했다.

김기춘의 비서실장 기용은 박근혜 대통령이 현재 촛불 정국을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야흐로 ‘유신 정국’의 재림이 예견되는 형국이다. 이 같은 우려는 대표적인 친박의원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김재원 의원이 느닷없이 ‘계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면 유신정국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국민적 우려는 이미 2012년 대선 과정에서부터 제기된 바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단지 박근혜 정권에 유신 독재 정권 시절 인물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성향도 민주주의와는 매우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여왕 성향, “박근혜의 레이저”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물은 대통령 본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9살 때부터 청와대에서 자랐으며, 1974년 9월 21일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5년 간 유신 독재 정권의 ‘퍼스트레이디’역할을 수행했다. 10.26 사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나이는 28살이었다. 한마디로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의 통치성향을 젊은 시절 내내 지근거리에서 보고 배운 인물이다.

20대 후반을 ‘퍼스트레이디’로 살았던 박근혜의 성향은 어떠할까. 이와 관련한 <동아일보>의 분석이 주목된다. <동아일보>는 2013년 6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의 성향에 대해 “박근혜의 레이저”라는 표현을 붙였다. <동아일보>는 “자신의 뜻과 다르거나 분위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말을 꺼낸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어버리는 ‘박근혜식 소통’ 스타일에도 권력자의 포스가 얹혀졌다. 바로 ‘레이저’였다.”라고 표현하였다. <동아일보>는 “박근혜의 레이저”를 “권위주의 청와대에서 사실상 ‘퍼스트레이디’로 살아온 세월, 비극적 개인사, 그리고 권력 주변의 표리부동한 군상에 대한 깨달음과 18년간의 ‘블랙아웃’이 복합적으로 교직된 캐릭터”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향은 전여옥 전 의원의 회고를 통해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2005년부터 3년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보좌했던 전여옥은 자서전〈i 전여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몇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이 중 전여옥이 박근혜 대통령의 ‘시중꾼’ 노릇을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전여옥은 “경상북도 대구에서 있던 행사로 기억된다. (중략) 그런데 비가 주르륵 내리기 시작했다. (중략) 옆에 있던 김태환, 이해봉 의원이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전 대변인 뭐하고 있나? 대표님 머리 씌워드려야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중략) 박근혜는 내가 씌워주기를 기다렸다. (중략) 나는 박근혜 대표 커다란 올림머리가 비에 젖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우비모자를 씌워주었다. 박근혜 대표는 여전히 한마디도, 미동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여옥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행기 이용 습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여옥은 “박근혜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면, 널리 알려졌듯이 이코노미를 탄다. 그런데 박근혜의 이코노미석 옆은 대개 블록이 되어 있다. 옆에 사람이 앉지 않게 하는 것이다.”면서 “이코노미 타는 이유가 뭔가? 사람들과 섞이기 위해 아닌가? (중략)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동아일보>나 전여옥 등 보수의 눈으로 볼 때도 중세시대 여왕을 연상시키는 행태를 보여 왔던 것이다.

보수주의자를 자임하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의 평가도 눈여겨볼 만하다. 윤여준 전 장관은 8월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로 국정이 운영이 되고 단기적인 성과가 나오던 시절이 아니다”라며 “우선 민주공화국이라는 게 어떤 나라이며 어떤 운영원리로 이끌어야 되는 건지 깊이 성찰했으면 좋겠다”고 박근혜 대통령의 비민주적, 제왕적 성향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윤여준 전 장관은 지난 1월 31일,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하여 “수직적·폐쇄적이며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하였다.


“권력에 눈이 먼 ‘이중인격’의 소유자”, 김기춘


그렇다면, 8월 6일 청와대 비서실장에 기용된 ‘정권 2인자’ 김기춘은 어떤가. 김기춘의 성향에 대한 분석은 1992년 12월 17일자 <동아일보>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이 발생하자, 사건 당사자인 김기춘의 성향에 대해 분석하였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기춘은 1972년 유신헌법 제정 기초 작업에 실무자로 참여한 이후 권력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해졌다고 한다. 김기춘은 1972년, 유신헌법 제정을 위한 기초작업에 참여한 후, 12월 대검찰청이 발행한 <검찰> 48호에 '유신헌법 해설'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여 유신헌법을 적극 옹호하기도 하였다. <동아일보>는 김기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취재를 토대로 “그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고 주위에서 말한다.”면서, “검찰 일각에서조차 권력에 눈이 먼 ‘이중인격’의 소유자라고 혹평까지 받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실제로 1972년 유신헌법 제정 이후 그의 행보를 보면, 김기춘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김기춘은 신직수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보좌관으로 발탁된 이후, 1974년 유신헌법에 따라 8명을 사형 집행한 2차 인혁당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또 김기춘은 김영삼 정권 창출을 위해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키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역감정을 조장하였다. 김기춘은 당시 초원복집에서 “부산경제가 잘 돼야 부산일보, 국제신문이 잘 되지, 부산이 망하는데 신문인들 온전하겠냐”며 “광고주들, 경제인들 모아가지고 신문사 간부들 밥 사주면서 은근히 한 번 좀…”이라며 신문사 간부들을 매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서슴없이 펼친 인물이다. 김기춘은 2006년 12월 22일 한나라당 의원총회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사이코다. 자기감정도 조절하지 못하고 자제력이 없다. 그러니 나라가 이 꼬라지”라고 폭언을 퍼붓기도 하였다.

<주간경향>의 분석도 <동아일보>의 견해와 일치한다. <주간경향>은 8월 14일 보도에서 김기춘에 대해 한 마디로 “40년 가까이 권력의 양지만 좇은 절대충성맨”이라 표현했다. 또 <주간경향>에 의하면,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김 실장이 걸어온 행보를 보면 민주주의나 인권, 이런 것과는 관련 없이 최고권력자 중심으로 그 사람에게 비위를 맞춰서 일을 해온 사람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이력과 성향의 소유자를 실질적인 ‘정권 2인자’로 기용한 현실에서, ‘유신정권’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은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김기춘의 비서실장 임명은 마치 박정희가 차지철 경호실장을 통해 당정청을 제압했던 것과 같다. 경력으로 보나, 스타일로 보나, 나이로 보나 김기춘 비서실장은 권력의 2인자로서 당정청을 제압할 인물로 적합하다. 그 뒤에는 유신시대 사람들인 막강한 7인회가 지원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앞뒤 재지 않고 ‘진격의 충성’”, 남재준


박근혜 정권에 포진한 ‘강경 보수파’ 군부 실세들의 스타일도 ‘유신정권’의 재림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파문을 일으킨 남재준 국정원장의 성향이 주목된다.

<일요시사> 3월 26일 보도에 의하면, 남재준 원장은 “부대 지휘관 시절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도록 했고, 부하들과 회식도 애국가로 마무리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직각보행을 어기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남재준 원장을 두고 “FM(군내에서 원칙이나 규정대로만 한다는 의미)의 대명사” 혹은 “돌직구남”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남재준 원장은 정작 자기만의 원칙을 강조한 나머지 본분을 넘어서는 황당한 인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파문이다. 남재준 원장은 이와 관련해 6월 25일 열린 국회 정보위 비공개 전체회의에 출석하여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공개했다”고 발언하였다. 그는 여야를 막론해 “국가 기록을 제멋대로 공개하느냐”는 비판이 이어졌음에도, 자신의 행위가 “국내 정보기관 수장이 정치에 개입”하는 일이라는 것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이른바 ‘원칙’을 강조해 온 남재준은 정작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비껴가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대화록에 'NLL 포기' 발언이 있느냐”는 민주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이 곤란하다”고 회피하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당시 민주당 정보위원들에게선 남 원장의 발언과 태도를 비판하는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남재준은 국정원장 취임사에서 “나는 전사(戰士)가 될 각오가 돼 있다.”고 발언하여 자기 특유의 강경 보수 스타일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남재준이 언급한 “전사”는 결국 ‘권력의 방패막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은 8월 21일, “국정원이 박 대통령 경호원 구실을 하는 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앞뒤 재지 않고 ‘진격의 충성’을 맹세하다간 박 대통령 마음은 살지 몰라도 국민적 공감대는 얻지 못할 것”이라 힐난했다.


‘영혼 없는’ 강경 군부실세, 김관진


김관진 국방장관도 박근혜 정권의 대표적 ‘강경 보수파’ 군부 실세다. 김관진 장관의 ‘강경 보수’ 일변도 스타일은 <중앙일보>가 보도한 엽기적 행각에서 잘 드러난다. <중앙일보>는 2011년 6월 27일, 국방부 청사 2층 김관진 장관의 집무실 의자 뒷쪽 벽에 “북한 김영춘(75) 인민무력부장과 김격식(71) 4군단장의 사진”이 붙어있다고 보도하였다.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국방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장관이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적장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짚어보는 차원에서 붙여놓은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김관진 장관의 스타일은 강경 일변도의 대북 발언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김관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공기로 공격원점을 때려야 한다”, “적 위협의 근원을 제거할 때까지 강력히 응징하라”는 등 대북 강경 일색의 발언을 해왔다. 특히 김관진 장관은 4월 3일, “만약 사태가 생기면 군사조치와 더불어 만반의 대책도 마련돼 있다”며 이른바 ‘개성공단 인질 사태’를 언급, 개성공단 잠정 폐쇄 사태를 불러온 데 일조한 바 있다. 강경 일색인 김관진 장관의 발언 스타일은 군사전략과 외교적 식견, 정무적 감각 등으로 군사 상황을 전체적으로 관리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에 걸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불러오고 있다. 한마디로 “장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에 대해서는 강경 일색인 김관진 장관도 국내 현안에 대해서는 권력의 입장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영혼 없는’ 공무원인 셈이다.

김관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합창의장으로 재직하면서 2012년 전시작전권 환수에 깊숙이 관여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김장수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도와 미국 측을 상대로 전시작전권 환수를 적극 주장했다. 그러나 김관진 장관은 박근혜 정권의 입장에 따라 미국에게 전시작전권 환수시기를 재연기해야한다고 공식 요청해야 했다. 김관진 장관은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자신이 전시작전권 환수를 대비해 준비했던 군의 준비상황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를 두고 <뉴스1>은 “환수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다시 재연기 협상을 지휘해야 하는 상황을 묘하게 보고 있는 분위기”라 비꼬았다.

정권에 눈치 봐가며 대북 강경 발언으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는 김관진 장관의 성향은 그야말로 ‘유신 정권’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존재감 없는 “해바라기” 내각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박근혜 정권의 핵심 요직을 차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왔다. 역시 정부 요직에 앉아 있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이정현 청와대 홍보실장 등도 앞서 살펴본 인물들의 성향과 대동소이하다.

반면 국무총리를 포함한 나머지 인사들은 앞서 살펴본 이들의 기세에 눌려 존재감 자체를 상실하고 있다. 먼저 “힘 있는 책임 총리가 되겠다”며 취임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행사장 총리”라는 비아냥에 시달리고 있다. <e중앙뉴스>는 5월 24일, 이와 관련하여 “정 총리는 전국각지에서 열리는 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하며 얼굴마담 역할을 충실히(?)하고 있어 ‘행사총리’, ‘의전총리’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고 보도하였다.

새누리당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존재감에 대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유리 지갑을 털려 하고 있다’는 국민적 ‘조세 저항’은 현오석·조원동 경제팀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때쯤 실무형 총리의 개입과 혜안이 나와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역할이 없는지, 역할을 해낼 능력이 없는지…. 아무튼 그의 존재감은 미약하다.”고 털어놨다.

존재감을 상실한 인사는 류길재 통일부장관도 마찬가지다.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되어 있던 4월 11일에 성명을 발표하면서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며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성명은 남북관계 현안을 두고 주무부처 장관 명의로 나간 첫 성명이었다.

그러나 류 장관은 당시 ‘공식 대화 제의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화를 제의했다기보다는 개성공단 문제를 비롯해 북한의 가중되는 위협적 행동 등 모든 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 한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하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통일부 성명이 대북 대화 제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류 장관의 해명은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해명에 의해 뒤집히고 만다.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날 청와대에서 “북한과 대화를 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 류 장관이 오늘 성명을 발표한 것”이라 하였다. 류길재 장관의 입장에서는 성명을 발표한 장본인이 자신의 성명 내용을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한 황당한 상황이 된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류길재 장관에 대해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팀에 군인 출신이 너무 많다. 밀리터리 마인드(군사적 사고방식)과 시빌리언 마인드(민간 사고방식)가 서로 부딪힐 때 통일부 장관이 너무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하였다.

<이데일리>는 존재감 없이 박근혜 대통령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내각에 대하여 “대통령의 ‘나홀로 리더십’이 국정운영의 기본방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참모도 각료도 자발적인 움직임없이 바짝 엎드린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본다.”고 냉정하게 지적했다.


국민 주권 시대에 맞는 성향을 갖춰야


박근혜 정권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 낸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도 모자라, 한국의 역사 시계를 70년대로 완전히 돌려놓고 있다. <이데일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성향에 대해 “국정운영을 원맨쇼 처럼 진행하면 의사결정은 독단으로 흐르고 정책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했다.

국민 주권 시대에는 그에 맞는 스타일의 인물이 필요한 법이다. 박근혜 정권은 ‘유신 성향 일색의 주요 인물들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에 맞게 적극 교체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해바라기”신세로 전락한 내각도 자연스레 대통령의 진정한 조력자, 국민 행복의 실현자로 거듭날 것이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