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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새로이 시작되는 첫날, 서울광장의 대규모 촛불집회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한 '국정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시국기도회'였습니다. 특히 오늘의 시국기도회에는 천주교 신자의 자격으로 초청 받은 문재인 의원도 참석하여 그 의미가 남달랐다는 생각입니다.




국정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모티브로 하는 이번 시국기도회는 "진실로써 재판하는 이가 없다. 거짓을 이야기하며 재앙을 잉태하여 악을 낳은 자들뿐이다"라는 이사야(59:4)의 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제단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지난 정부 내내 교회는 슬프고 괴로웠다"고 전제한 뒤, "대자연을 파괴하고 시민들을 삶터에서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내쫓는 광경을 바라볼 때마다 국가의 존립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거듭 묻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 때문에라도 "국가와 자본이라는 두 거대권력 사이에서 사람을 지켜줄 아름다운 정부의 탄생을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이런 소망을 이뤄주기를 진심으로 염원하였다"며 지금까지의 기대감을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제단은 "대통령 선거과정에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인 공작을 전개함으로써 민의를 왜곡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상상조차 못했던 불법의 자행에 우리 모두 경악하였다"고 일갈했습니다. 또한 "근소하게 엇갈린 결과마저 사전에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들마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선거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에까지 그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꼬집었을 뿐만 아니라 "믿을 수 없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경계의 빛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어 사제단은 "지난 봄부터 진상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호소가 잇달았다"며, 이러한 움직임에 천주교 또한 예외가 아니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절차민주주의의 훼손과 오염에 대한 반발로 전국 15개 교구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뜻을 모아 시국선언을 발표했으니까요. 사제단에 따르면 이렇듯 전체 교구가 시국선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천주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요.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한 목소리로 모은 천주교의 모든 호소는 철저히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있었던 청문회에서 알 수 있듯이 GH정부와 집권여당은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들을 방해하고 조롱하기만 했습니다. 심지어는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마저 또 다른 거짓말로 얼버무리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고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사제단은 강경한 목소리로 "그렇게 해서 가려질 일이 아니다'라며. "남북정상대화록의 본의를 왜곡하여 선거에 도용한 일이나 국정원이 이를 무단 공개한 일 등은 여론조작을 위한 댓글공작과 함께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할 중범죄들이다"고 규정했습니다.

이에 사제단은 "거짓이 지어내는 비참한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나라의 소중한 젖줄을 죽음의 늪으로 만들어버렸던 이명박 정권이 기실 현 집권세력임에도 반성은커녕 떳떳한 국책사업이었다고 강변하는 것도 그 사례"라고 꼬집은 뒤. "살려보겠다던 사업의 구실도 그랬지만 살려냈다던 결과에 대한 평가도 모두 견강부회하는 거짓말들"이었다고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또한, "아예 고질이 되어버린 거짓의 암세포를 말끔히 치유하지 않는 한 우리사회는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다"며,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인간다움 그 자체를 상실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한껏 높였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다 같이 욕심을 비우고 현실을 정직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전제하며, "대통령이 나서서 정치개입과 여론조작 등 지금까지 국정원이 저질렀던 민주주의에 대한 불법적이고 일탈적인 해악과 범죄들을 낱낱이 드러내고 법의 심판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기를" 촉그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역사가 바로 설 수 있고 대통령 자신 또한 '대선무효'라는 불명예를 씻고 떳떳하게 국민 앞에 나설 수 있다면서.




아울러 동료 사제를 비롯한 수도자들, 천주교 교우, 민주 시민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고 남겼습니다. "거짓에 의한, 거짓을 위한 통치가 이토록 순조로워진 것은 악을 방관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며, "앞으로 닥칠 공안정국 아래 우리의 일상은 용산참사와 쌍용차 해고사태, 4대강과 밀양송전탑 건설 강행, 제주 강정 구럼비와 같은 파괴와 불법의 반복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던 저항의 정신으로 거짓 축출과 민주주의 회복 운동에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며,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만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정신의 등불을 꺼뜨리는 일이 없도록 서로 돌보기로 하자"며 연대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제단은 천주교 평신도와 수도자, 그리고 사제들의 뜨거운 열망을 담아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호소하고 나섰습니다.




첫째, 국정원은 지금까지 저지른 온갖 불법으로 자신이 얼마나 민주주의 존립을 위협하는 해악적 존재인지 스스로 충분히 증명하였다. 그러므로 더 이상 존립할 이유가 없다. 당장 해체되어야 한다.

둘째, 원세훈, 김용판 등 국정원 사태와 관련된 모든 범법자들은 엄중히 처벌되어야한다.

셋째, 청와대는 법과 원칙에 따른 검찰의 진상규명 노력을 제지하려는 음모를 즉각 중단하라.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부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넷째, 박근혜 대통령은 이상의 불법을 깨끗이 정화한 다음 국민 앞에 정중하게 사과하고 새롭게 신임을 구하라. 그래야만 '대선무효'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