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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정복자나 집권자가 남긴 기록일까. 한 시대에 과한 정사와 야사가 동시에 존재한다면 과연 어느 것이 진정한 역살일까. 기록되지 않고 구전되어 오는 얘기는 역사가 아닌 신화일까. 삭제되거나 없애버린 기록은 역사가 아닌 걸까.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도 왜곡된 채 몇백 년이 흐르면 그것이 진짜 역사가 되는 걸까.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교수가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기고한 "역사는 무기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기 전 갑자기 떠오른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 것이 정의하기 어려운 '좌파'라는 단어를 운운하며 새누리 김무성은 '역사교실'이란 정치모임을 조직해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선포했고, 교육계에서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뉴라이트 인물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검정통과 시키며 지금까지의 역사를 부정하고 나선 마당인지라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일부 역사왜곡이 필요한 자들의 돌출행위는 우리나라 지배층으로 군림하고 있던 소위 '친일파'와 그들의 '후손'들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순작용을 낳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침묵하면 몰랐을 중, 고등학생들까지 분노를 표출하며 '친일파 청산'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으니 말입니다.

과유불급이라고, 욕심이 과하면 화를 피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친일행적을 감추기보다는 친일자체를 애국이나 정의로 포장하려는 그 오만방자한 행위를 획책하고 있는 세력, 용서와 화해의 대상이 아닌 단죄와 심판의 괴물들 뿐인 그들을 참역사의 한 페이지에 반드시 기록해야 할 이유입니다.


출처 - 참여연대



역사전쟁은 계속된다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를 둘러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래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과거 해석의 주도권을 쟁취하려는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의 미래는 이제 -다시 한 번- 시작되었다.

20세기 독일에서 벌어진 역사전쟁을 분석한 『무기가 된 역사』의 저자 에드가 볼프룸은 책 끝머리를 이렇게 맺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또다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으로 역사전쟁이 터진 2013년 가을, 새삼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이다. 지금 역사는 과거의 객관적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과거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되어 있다.


독일, 과거 청산을 둘러싼 진영 충돌


흔히 독일은 과거 청산의 모범국으로 알려져 있다. 나치 독재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의 역사를 국가와 국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 청산한 나라라는 것이다. 특히, 독일과 같은 패전국임에도 난징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등의 전쟁 범죄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면서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거부하는 일본과 대조적인 자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독일의 ‘성공한’ 과거 청산은 일사불란한 궤적이 아니라 지난한 험로를 거쳐 차곡차곡 쌓아올린 성과다.

여기선 통일 독일 이전 서독의 과거 청산을 들여다보자. 서독의 과거 청산은 1945년 미군 점령기부터 시작되었으나, 대중적인 공감대를 얻은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1969년 서독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민주주의자인 구스타프 하이네만이 대통령에, 빌리 브란트가 수상에 선출되면서 강력한 과거 청산이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치 독재에 반대했던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노동자 저항 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정부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희생자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구했다. 그러자 보수 세력이 반발했다. 그들은 과거 청산이 좌경적이며 동독의 반파시스트 신화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친동독’의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공격하면서 이로 인해 독일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과거 청산을 둘러싼 갈등은 1986~1987년의 ‘역사가 논쟁’에서 절정에 달했다. 여기에는 많은 역사가들이 참가했으나, 학문적 차원의 토론보다는 진영 논리에 입각한 정치 투쟁의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더 흔했다고 한다. 좌파 자유주의 역사가들은 나치 독재와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지속적인 속죄의 노력을 거듭 강조했다. 반면 보수 역사가들은 이처럼 독일을 상처받은 민족으로 만드는 자학사관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서독이 패전 이후 4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으므로 더 이상 불행의 역사만을 강조하지 말자는 것이다.


한국, 화약고가 된 과거사 청산


독일의 분단국 시절 과거 청산을 둘러싼 역사전쟁을 들여다보면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발발한 역사전쟁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승만 정부에 의해 친일 청산이 좌절된 이후 독재의 정치가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그리고 4.19와 5.18이라는 시민의 고귀한 희생 위에 민주화가 만개하면서 1997년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김대중 정부에 연이어 노무현 정부까지 집권한 10년을 상징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과거사 청산이다. 김대중 정부부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과거사 진실 규명이 추진되었고, 본격적인 정부 주도의 과거사 청산은 노무현 정부에 의해 이루어졌다. 국정원, 국방부, 경찰 등 권력기관 단위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가 민관 합동으로 생겨났으며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등이 출범했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에 대해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정체성 혹은 헤게모니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될 것을 우려했다. 때마침 뉴라이트가 등장하자 보수 세력은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뉴라이트는 과거사 청산에 대해 ‘국민적 예지를 모아 선진국 건설에 일로매진해야 할 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자학사관을 퍼뜨리며 지배세력 교체와 기존 질서 해체를 위한 ‘과거와의 전쟁’에 자신의 명운을 걸고 있다’고 맹렬히 공격했다. 이어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친북좌파적 교과서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역사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과거사 청산에 반발하며 뉴라이트가 순식간에 세력화하고 역사전쟁을 도발한 지 10년이 지났건만, 끝이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더욱 뜨거운 열전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역사학계는 물론 정치인까지 가세하여 역사를 정치적 무기로 삼아 휘두르고 있다. 그 맹렬한 기세에 국민이라면 어느 한편에 꼭 서야만 할 것 같다. 역사를 무기로 삼는 전쟁 방식으로는 역사 갈등이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한중일조차 서로 역사 이해의 깊은 골을 딛고 역사 대화를 시도하는 마당에 ‘우리끼리’의 역사 화해와 역사 대화, 과연 불가능하기만 한 것일까.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