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정치꾼들은 6.4지방선거에, 촛불시민들은 세월호 참사에, 일반시민들은 월드컵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는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를 움직여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의료계 내부로부터는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행보는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이라도 볶아 먹을 기세입니다.

지난 5월 30일, 임시 의협 집행부는 보건복지부와 '원격진료 시범사업' 실시 방안에 합의하며 "원격의료 시범사업 5월말 착수, 6월부터 시행"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원격진료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추진 반대'의 입장"이라면서 이번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것만이 "원격진료를 확실히 막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하는 의협 집행부의 논리입니다.

즉, "입법전 시범사업을 통해 원격의료의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하기로 한 만큼 시범사업을 통해 원격진료의 불안전성·효과 없음이 분명히 입증될 것이므로 정부의 일방적인 원격진료 강행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아게 무슨 말인지, 막걸리인지 당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꼭 찍어먹어 봐야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선거판 정치꾼들의 '당선부터' 심보가 의료기기만이라도 일단 팔아먹겠다는 꼼수에 투영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처음 의협이 의료민영화·영리화에 반대 목소리를 냈을 때, 많은 민초들이 지지하고 응원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비교적 보수적 색채가 강한 집단이 민초들의 뜻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운 마음이었기에, 의협이 대정부 싸움을 벌일 때 기꺼이 지지와 응원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의협의 '의료민영화·영리화 반대' 구호가 겉치레에 불과했을 뿐, 결국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 또는 '키우기'로 비친다며 불신의 목소리를 키워간 것이 사실이고 보면 무엇보다 스스로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밝히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라포르시안



어쨌든 지난 30일,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가 "의협 집행부가 협상과 투쟁에 대한 전권을 부여 받은 비대위를 배제한 채 회원들이 모르는 사이에 복지부와 원격진료 시범사업 협상을 진행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며, "원격진료 시범사업 6월초 실시 계획은 원천 무효"임을 주장한 것은 반길 만한 일입니다. 아울러, 의료계 전 직역의 시범사업 거부운동을 호소하고 나선 것도, "세월호와 같은 대형 인재를 당한 후에도 환자와 국민건강을 경시하는 졸속 시범사업을 강행하는 복지부와 정부는 당장 의사와 국민과 환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와는 달리, 지난 30일에 발표한 '올바른 의료제도의 항구적 정착을 염원하는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의 성명은 화끈하고 속 시원했습니다. '전의총'은 "임시 의협 집행부는 의료계 역사의 죄인으로 남으려 하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환자와 국민 건강을 경시해 대한민국 의사 그 누구도 전문가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졸속 시범사업 동의를 철회하고 다시 한 번 민의를 수렴하라"고 촉구하면서,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시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하라"는 경고까지 남겼습니다.

특히, '의협 비대위'를 향한 "지금처럼 아무런 결정권 없이 허수아비 같은 조직으로 남아있으려면 해산하라"는 질타는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영리화' 정책 추진으로 타들어가던 속을 다소나마 식혀주었는데요, 이날 발표한 '전의총'의 성명서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임시 의협 집행부는 의료계 역사의 죄인으로 남으려 하는가?



원격진료 시범사업 실시라는 것이 정부측에서 원격진료를 안착시키기 위해 의사들을 농락하는 꼼수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예측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시 집행부는 전 회원의 의중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애써 외면하고, 아마도 시범사업 거부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까지 의심되는 상황을 굳이 연출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비대위의 정체성에 대한 시비는 논외로 하더라도 왜 의료계가 복지부의 눈치를 보면서 반모임을 자제해야 하며, 언론을 통해 의정합의안을 깨겠다고 협박을 늘어놓는 복지부 관리의 심기를 살펴야 하는가?

집행부 성명서대로 진정 회원들의 화합과 대동단결을 위해서라면 집행부가 스스로 나서 반모임을 만들고 회원들의 요구를 듣는 방법을 고민해도 모자를 만큼 저번 투쟁에서의 회원들간의 토론과 대화의 장은 너무나 부족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집행부가 그런 소릴 했다면 회원들의 뜻보다 복지부와의 협상과 그에 떨어지는 몇 조각의 부스러기가 더 소중하다는 뜻 밖에 달리 어떤 해석이 가능한가.

더구나 의정합의 이후 복지부는 원격진료 법안을 국회에 입법 상정하여 약속을 먼저 깨버렸으며 복지부 관리들은 애초 말도 안 되는 6개월 시범사업에 대해서 세월호 사건 등으로 시기가 늦어진 것에 대해 종료 시점을 자기들 뜻대로 못박고 모집단수를 늘려서라도 올해 안에 끝내는 모델을 제시하라고 의료계에 거듭 강요하고 있다.

정부가 스스로 맘대로 약속도 깨버리고, 의사로서 누구도 받아들이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졸속 시범사업을 주장하는데도 의정합의가 깨지는 것이 두려워 내부의 반모임과 회원설문을 의료계 분열조장이라고 함부로 규정하는 것이 정말 임시 집행부의 정체성인가?


이에 본회는 강력한 분노의 뜻을 표하며 이런 후안무치의 성명서를 낸 임시 의협 집행부와 아울러 비상대책위원회, 복지부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지금처럼 아무런 결정권 없이 허수아비 같은 조직으로 남아 있으려면 해산하라.

- 임시 의협 집행부는 이번의 성명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경수 회장 직무대행이 직접 나서 회원들에게 사과하라.

- 환자와 국민 건강을 경시하며 대한민국 의사 그 누구도 전문가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졸속 시범사업에 동의한 임시 집행부는 이를 철회하고 다시 한 번 민의를 수렴하라. 그렇지 않을 시엔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하라.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