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생 136인의 시국선언-6.10민주항쟁기념일에 부쳐
불탄의 촛불누리/촛불 시국선언 : 2014. 6. 8.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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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고려대학교 136인의 학생과 9개 학생자치단체는 민주광장에 모여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하는 고려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50여 일이 지났음에도 희생자의 숫자만 바뀌었을 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시국을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입니다.
고려대학교 대학생들의 시국선언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대학교 대학생들의 시국선언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21세기대학뉴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고려대학생 시국선언
- 6월 10일 민주항쟁기념일에 부쳐 -
4월 16일 사고로서 보도되었던 세월호의 침몰은 ‘사고’를 넘어 ‘사건’이 되었다. ‘생명이 우선인가 돈이 우선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사건 발생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관련 기업, 그리고 구조와 후속처리의 책임을 맡은 정부와 언론은 각각 무엇이라고 답했는가? 이에 ‘생명이 우선’이라고 답하기 위하여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거리에 나와 선언한 시민 수백 명이 경찰에 잡혀갔다. 심지어 용혜인 씨의 제안으로 국화와 “가만히 있으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침묵의 행진을 하던 청년 100여명까지 5월 18일 저녁 경찰에 잡혀갔다. 망언에 대하여 사과 받고 대통령과 대화하고 싶다며 영정을 가슴에 품은 유가족 200명이 KBS와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경찰의 방패벽에 가로막혀 오열해야했다. 그날은 5월 8일이었다. 2014년 어버이날의 해는 그렇게 졌다.
생명이 우선인가 돈이 우선인가? “가만히 있으라.”
가슴에 영정을 든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경찰 방패벽 앞에서 밤새 ‘제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폭도입니까, 우리도 국민이 맞습니까’라고 외치며 오열하던 바로 그 시각 청와대 안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로 침체된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한 긴급회의를 열어 ‘규제 완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침묵의 행진 중 무차별 연행되었던 고려대 학우 8명이 유치장에 갇혀 있던 5월 19일 정부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눈물로 사과한 뒤 곧바로 핵발전소 수출을 위하여 아랍에미리트로 떠났다. 그 다음날 사복을 입은 경찰이 유가족을 미행하던 중 유가족에게 발각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아이들”이 죽었기 때문에 슬퍼해야 하는 것인가? 안전에 대한 어떠한 조치 없이 수명이 연장된 노후선박, 무리한 선박 증축과 화물 과적,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무책임한 저임금 비정규직 선원 고용, 구조가 전문이 아닌 민간 잠수업체와의 계약, 선정적인 언론 보도 등 세월호 침몰이 사고를 넘어 사건이 된 근본적 원인은 어떤 한두 인물이, 한두 단체가 책임지고 해체될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자리에, 안전의 자리에 이윤을 위한 비용 절감을 넣어 온 이 사회의 오랜 전통으로부터 이제는 결별을 선언할 때다.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 가족을 비롯하여 한국 사회에 ‘이 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는 울림이 퍼진 것은 이것에 대한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어디에서나 앞당겨진 죽음의 냄새를 맡게 되었다.
288명의 세월호 희생자와 아직까지 실종 상태인 16명, 그리고 예를 들면 연일 발생하는 지하철 사고와 사망하는 지하철 노동자들, 예를 들면 활동보조인을 제공받지 못해 화마(火魔) 속에서 걸음 한 번 떼지 못하고 4월 19일 산화한 장애인 송국현, 예를 들면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길거리에 내몰리는 철거민들, 예를 들면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안전에 대한 대책 없이 수명이 10년 연장된 고리핵발전소, 예를 들면 핵발전소와 연결된 초고압 송전탑 문제로 목숨을 내놓아가며 싸우는 밀양 할매할배들, 예를 들면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서 받고 있는 알바노동자들, 예를 들면 이주노동자들, 예를 들면 시간강사들, 예를 들면 청소노동자들, 예를 들면 경비노동자들, 예를 들면 온갖 듣도 보도 못한 희귀병에 걸린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 예를 들면 5월 17일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염호석, 예를 들면 삼중전공의 과로로 사망한 대학생, 예를 들면 고액등록금으로 고통 받는 학생과 부모, 그리고 故 김지훈 학우를 포함한 모든 죽음이 바로 우리가 몸담은 시대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으라!”
우리 모두는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이들과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세력의 전쟁 속에 있다. 민주화항쟁 기념일인 6월 10일이 다가온다. 1987년 6월 10일 이 땅의 시민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군사독재의 명령을 거부하고 기어코 거리로 나와 군부의 항복을 받아냈다.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해온 이 사회의 야만이 수백의 죽음으로 표현되고 그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수백이 잡혀가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잔인한 4월, 비참한 5월을 보내고 있다. 더 이상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1987년 6월을 기억하며 우리의 6월을 맞이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우리는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이 사회와 그 전통에 대한 거부를 선언한다.
산 자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고려대학생들은 모든 정치권력에 요구한다.
▶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바라는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의 요구를 조건 없이 전면 수용하라.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하여 성역 없이 조사하고 그 책임을 물어라.
▶ 유가족 사찰, 평화적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진압 등 초법적인 공권력 남용을 중단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라.
▶ 생명보다 우선인 것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조치를 철회하라.
위 요구사항을 이행할 수 없는, 혹은 이행할 생각이 없는 정치인들은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이 정권과 역사로부터 퇴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