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충청북도 청주시 사창동 어느 골목의 오후 1시. 차량용 확성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립니다. 한 대도 아니고 두세 대의 승합차가 떠드는 소리 때문에 어수선해졌기 때문입니다. 양복을 입은 젊은 청년들의 손에는 무슨 입장권처럼 보이는 표가 들려져 있었고, 그것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또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에 지역 주민들이 저층 아파트에서, 주택에서 하나씩 고개를 내밀며 모여듭니다.

“자.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라면을 공짜로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어서 나오셔서 모두 받아가세요.”

“잠시 후 1시 20분부터 딱 3분 동안만 나눠드립니다. 나중에 못 받으셨다고 후회하지 마시고 얼른 나오셔서 받아 가세요.”

“딱 3분 동안만 새롭게 출시된 된장라면을 무료로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얼른 시식하신 다음에 맛이 좋다고 생각되시면 나중에 많이 팔아주세요.”

지나가던 연세지긋하신 할머니께서 호객을 하고 있던 양복을 쫙 빼입은 젊은이한테 한마디 물어봅니다.

“이 라면 국산 된장으로 만든 거야?”

어정쩡하게 얼버무리듯 대답은 하지 않고 저쪽에서 걸어오시는 노인들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무슨 영화관 입장권처럼 생긴 것을 나눠주면서 라면을 받아가라고 권유합니다.

시간이 1시 20분이 되자 기다리고 있던 순서대로 따라오라며 골목에 쳐놓은 간이천막 좌판으로 데리고 갑니다. 양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날씨가 추우니까 모두 가까이 다가오라며 좌판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이게 하더니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오신 순서대로 라면을 드릴 테니 먼저 이 봉투 하나씩 받으세요.”

모여든 사람들은 검정봉투를 하나씩 지급받고 얼른 라면을 주기만 기다리지만 젊은 청년은 라면만 드리면 섭섭해 하실 테니까 몇 가지 선물도 함께 드리겠다며 모여든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검정봉투를 앞으로 내밀라고 하더니 먼저 ‘미인연출’이라고 쓰여 있는 Green Tea Mask Pack을 하나씩 봉투에 담아줍니다.

원래 얼마 얼마짜리인데 이렇게 선물로 주니까 주변에 소문을 내달라는 것입니다. 그 선물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좌판을 가운데 놓은 상태에서 더욱더 밀착되어가고 있습니다. 내년 3월에 체육관에서 박람회를 하는데 자신들도 참여를 한다며 4번 부스를 찾아오면 이런 선물을 더 준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좌판 아래에서 스텐냄비 하나를 꺼내 듭니다. 중국의 한 소년이 7살 때부터 15살 될 때까지 이런 스텐냄비로 라면만을 끓여먹으면서 자랐는데 지금은 다 죽어간다면서 그 이유가 스텐냄비에 있는 중금속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치약을 꺼내 천에 듬뿍 묻히더니 스텐냄비 안쪽 밑바닥을 힘껏 문지릅니다. 아주 잠시 후, 스텐냄비를 문질렀던 천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내밉니다. 눈으로 보기에도 천은 아주 시커멓게 오염이 되어있습니다. 이런 스텐냄비로 라면을 끓여먹지 말라는 당부를 합니다.

잠시 사람들을 쳐다보던 젊은 청년은 그보다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진행을 넘기고 주변을 어슬렁거립니다. 바뀐 진행자는 선물을 먼저 드려야 한다면서 ‘진품건강패드’라고 쓰인 ‘다나아 & 인삼’이라는 인삼성분의 파스패드를 꺼내 듭니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받으려고 봉투를 든 손을 내미느라 또다시 느슨했던 자리가 극도로 밀착되기 시작합니다. 개중에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파스패드 하나씩을 더 담아줍니다.

자신은 원래 주방용품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며 체육관에서 박람회를 할 때 자기가 있는 부스를 찾아오면 이런 선물을 또 준다고 합니다. 체육관 박람회장에서 자신이 진행하게 부스가 4번째라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 들려주면서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던 진행자는 갑자기 직원에게 편수 냄비 하나를 달라고 합니다. 뚜껑에는 선명하게 ‘키O아트’가 새겨져 있습니다. 아까 스텐냄비에서 했던 실험을 똑같이 했지만 이번의 냄비에서는 시커먼 오염자국이 천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냄비에다 라면을 끓여먹어야 한다는 당부를 다시 한 번 합니다.

하는 모양새가 점점 뭔가 부자연스럽습니다. 낌새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낀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진행자는 곧바로 ‘쓰레기 물기 흡착제’라고 설명하면서 ‘물장군’이라는 제품을 또 주겠다면서 잠시 신기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쓰레기 물기 흡착제’라는 제품은 분말로 되어 있었는데 검정봉투에 포장을 뜯고 가루를 먼저 담은 후 음식물 쓰레기라고 생각하라며 물을 조금 부어 담으니 잠시 후 팥빙수의 얼음가루처럼 빙결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와~”하는 탄성이 들려옵니다.

몰입이 되어 있다고 판단을 했는지 진행자는 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아까 보여줬던 ‘키O아트’ 편수 냄비를 제외한 네 가지의 냄비를 더 보여주면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독일제품과도 비교하며 설명하는 그 모습에 나이 든 노인들은 완전히 꿈나라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5종 세트의 가격이 롯데백화점에서 587,000원입니다. 체육관 박람회장에 있는 4번째 부스로 찾아오시는 분들께는 특별히 40만원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소문내 주시고, 그날 많이 참석해 달라는 뜻에서 이렇게 선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가격까지 거론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눈치 빠른 젊은 사람들은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던지라 이제는 남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여전히 그 노인들은 현란한 진행자의 말솜씨에 빠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마지막 선물이라며 쌀 성분으로 만든 비누를 남아있는 노인들이 내밀고 있는 봉투에 하나씩 담아주면서 오늘만 특별히 자신의 판매수당인 7만원까지 빼서 선물로 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것도 남아있는 노인들 중 세분만 추첨해서 말입니다.

“자. 저희 이 5가지 5종세트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처음에 587,000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년 3월에 있는 박람회 부스에서는 특별히 할인기간 7일 동안 40만 원에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대전에서도 지금 홍보를 하고 왔는데 어떤 멋지게 차려입으신 귀부인께서 지금 사고 싶다고 40만 원에 팔 수 있냐고 했는데 제 물건이 아니고 회사 물건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팔지 못한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가 회사에 들어가서 윗사람한테 엄청나게 혼이 났습니다. 고객이 원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제품을 드렸어야지 그것도 처리하지 못했냐면서 말이죠. 그래서 오늘은 제가 먼저 어머님, 아버님들께 혜택을 드리려고 합니다. 솔직히 이 제품을 판매하면 제게 7만원의 수당이 떨어집니다. 그것까지 포기하겠습니다. 그럼 이 제품이 얼마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33만원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는 거기에다가 130,000원짜리 곰솥까지 사은품으로 해서 세분께만 그냥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품은 먼저 써보시고, 여섯달 동안 쪼개서 조금씩 내시면 되니까 그냥 쓰시는 거나 마찬가지십니다. 모두 표를 가지고 계시죠? 표를 쥔 손을 앞으로 내밀어 보세요.”

그 말에 처음에는 라면 한봉만 공짜로 얼른 받아 가려고 했던 노인들은 앞을 다투어 표를 쥐고 있는 손을 앞으로 내밉니다. 진행자는 지금까지 몇 번을 반복시켜서 물어보고 대답했던 모두가 뻔히 알고 있는 질문을 하나씩 던져봅니다. 그 질문에 뭣도 모르고 가장 열성적으로 크게 대답하는 노인들 순서대로 차례차례 주변에 있던 직원 한명과 짝을 맞춰 선물을 받아가라고 엮어줍니다.

처음 공짜로 라면을 준다는 말에 국산 된장으로 만든 라면이냐며 묻던 할머니도, 판단력이 흐려 보이는 주변에 있던 노인들도 주방세트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앞서가는 젊은이들을 따라 각자 자신의 집으로 떠나기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비교적 젊어 보이는 50대의 아주머니 두 분은 그냥 무료로 주는 된장라면을 하나씩 더 받아들고는 총총히 걸음을 옮깁니다.

노인들이 가리키는 대문 앞에 이르자 청년들은 주방세트가 들어있는 박스를 받침으로 하여 지로영수증으로 보이는 종이에 노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며 득의의 웃음을 사악하게 짓고 있습니다. 공짜로 준다는 라면을 하나 받으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여러분의 부모님께서 이런 경우를 당하신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