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끝났다 하지만 보수권력의 지능적 집권 쿠데타 시나리오는 이미 가동중
총성 없는 ‘지능 쿠데타’와 국민혁명
- 2016. 11. 23. 현장언론 민플러스 칼럼, 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
1. 총성 없는 보수쿠데타 vs 국민혁명
필자는 지난번에 현 비상시국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한국 보수진영 내부의 권력투쟁, 즉 친박계를 대체하려는 새 보수세력(여기서는 ‘신보수’라 부른다. 이들은 ‘총성 없는 쿠데타’의 주도 세력이다)의 비상한 움직임이라고 추론했다. 또 현대사의 고비마다 막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온, 한국정치의 사실상 최대 주주인 미국은 이 흐름에 적어도 방조 또는 동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신보수는 지난 4.13총선 이후 민심과 이반된 박근혜식 ‘극(極)보수’ 정치는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리고 유신시절 김재규가 그랬듯 ‘10월 정변’의 방아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당겨졌다고 분석했다. 또 이들 ‘신보수’ 세력의 궁극적 목적은 새로운 형태의 이른바 ‘합리적 보수정권’ 창출이라고 추론했다.
비상시국이 4주째를 지나면서 정국의 주도권은 박근혜와 친박이 아니라 이미 신보수와 국민이 쥐고 있다. 지난 19일 전국적으로 백만 촛불이 다시 일어섰고, 예상대로 여야합의 탄핵정국이 시작되고 있다. 현 비상정국은 누적된 모순이 폭발한 87년 6월 항쟁과 지배집단의 내분이 격화된 10.26사태의 양상이 동시에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2. 조선일보 “탄핵정국을 개헌정국으로!”
탄핵 국면은 다가온 현실이다. 탄핵심판이 국민승리가 아니며 그 승리의 주된 방법도 아님은 지난번에 언급한 만큼 여기서는 생략한다. 탄핵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현실적으로 탄핵 국면의 함정에 대처하고 극복하는 것이 중요 과제가 되었다. 신보수가 노리는 탄핵 국면의 효과와 목표는 3가지이다. ① 광장의 즉각 퇴진, 국민혁명 열기를 시급히 제도 정치권으로 흡수하여 통제한다. ② 신보수가 정국 정비와 ‘보수연합 신당’을 창당할 시간을 확보한다. ③ 탄핵 기간을 활용하여 박근혜-최순실 국면을 ‘개헌국면’으로 전환한다.
조중동 수구보수언론은 박근혜 정권과 친박을 때리고 촛불시위를 고무추동하고 있으나,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조선일보는 신보수의 정권 창출에서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21일자 사설에서 야권 대선주자들에게 ‘총리 선출’, ‘탄핵’,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주문했다. 이 사설의 속뜻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탄핵을 조속히 여야 합의로 진행하고, 내각제 개헌(분권형 개헌)을 할 수 있는 총리를 뽑아 탄핵기간 조기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도 끝내고, 대선 없이 보수연합 집권시대를 여야합의로 만들자. 이들의 1차 지향점은 개헌이다. 개헌을 통한 정계개편이다. 탄핵 국면의 목표를 조기 개헌으로 잡고 있다.
3. 박근혜 청와대, 궁지에 몰린 쥐
ⓒ 민주언론시민연합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시도한 청와대 영수회담 실패 이후 청와대의 노골적 수사협조 거부와 ‘탄핵할 테면 하라’고 버티는 행보를 주요 언론들은 박 대통령의 강공노선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사실과 정반대 해석이다. 반면 지난 22일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칼럼에서 “이제 박근혜는 과거”라고 선언했다. 이제 박근혜 시대는 끝나 뒤처리만 남았으니, 촛불도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박근혜에게 퇴로를 열어주자는 것이다. 정두언 전 의원의 21일자 CBS 인터뷰를 보자. 그는 박 대통령이 모종의 반격 시나리오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 “무서워서 시간을 끄는 거다. 무슨 전략적인 게 아니고. 매 맞을 걸 두려워서 자꾸 ‘이제 내일 맞을게요, 모레 맞을게요’, 그러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근혜와의 싸움은 끝났다는 얘기다.
이들의 말대로 현재 박근혜의 청와대는 강공을 쓰는 게 아니다. 청와대는 신보수의 총성 없는 지능적 쿠데타와 국민저항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조선일보가 제안한, 야당과 협상에서 대통령 임기 보장과 거국총리를 주고받는 협상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 못하고 어설프게 대응하다 결국 최종 실패했다. 청와대는 더는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검찰도 ‘죽은 권력’에 충성하는 게 자신들에게 전혀 유리하지 않음을 간파했다. 박근혜 청와대가 지금 사퇴하면 감옥으로 직행해야한다. 청와대의 최대 관심은 정권 복귀가 아니라 생존이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늪에 빠져들고 있다. 언론의 추론대로 김기춘이 박근혜 뒤에서 사태를 여전히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조중동은 김기춘, 우병우에 화살을 돌려 ‘끝내기’에 집중하고 있다.
4. 죽은 권력과 새로운 보수권력
대통령 박근혜의 몰락은 시간문제로 ‘즉각 하야’를 제외한 처리방법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가 이승만의 전철을 따라 망명을 시도할지, 모든 것을 포기한 뒤 신보수와 어떤 정치쇼를 벌일지, 아니면 돌발적 사태를 유도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계엄은 불가능하다. 우선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이며, 설사 이들이 법을 무시한다고 해도 명분과 정국의 주도권을 이미 놓친 상태다. 죽어가는 권력이 계엄을 시도하는 것은 가능치 않다. 반면 새롭게 등장하는 신보수가 선택한 정변의 방법은 유혈충돌과 계엄이 아니라 전례 없이 ‘부드러운 쿠데타’ 방식이다. ‘군과 경찰’이 아니라 ‘언론과 역설적이게도 국민촛불’을 활용하는 지능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
채동욱 전 총장이, 한국 검찰은 권력의 개로 남을지 결단하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우병우 휘하의 검찰이 갑자기 정의의 사도로 변신하여 대통령을 주범과 공범으로 공소장에 명시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는 죽어가는 권력이고 이미 특검과 국회청문회가 예정되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도 특검의 수사대상이다. 검찰이 발표한 공소장은 절충적이나 청와대를 탄핵하기에는 충분하다. 검찰이 정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들도 살기 위한 선택을 시작했다.
5. 새누리당 해체와 제3지대 보수신당 창당
ⓒ 월간중앙 12월호
월간중앙 12월호는 <“안철수·반기문·유승민·손학규가 적임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권자 10명 중 7명 정계개편 전망, 47%는 “새누리당 비박계가 제3지대 태풍의 눈 될 것”…, 반기문 지지하는 전통 보수세력과 안철수 중심 중도·호남의 결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라고 적고 있다. 또 내년 대통령선거가 친박 중심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제3지대 정당 등 3자 대결구도로 치러질 경우 어느 정당 후보를 지지하겠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새누리당 13.9%, 더불어 민주당 43.1%, 제3지대 정당 30.0%였으며 13.0%는 응답을 유보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변수가 많지만, 만약 새누리당이 사실상 소멸되어 제3지대 정당에 흡수될 경우 지지도가 43% 정도로 민주당과 비슷한 규모의 정당이 출현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 대선 때 제3지대 정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경우 후보 선호도는 안철수(26.3%), 반기문(20.4%), 유승민(17.1%) 순이었다. 여론조사 형식을 빌렸지만 이미 보수언론은 제3지대 보수신당을 띄우기 시작한 것이다.
6. 장기전, 새로운 전선
청와대가 대책 없이 시간을 끌며 ‘퇴임 후 보장’을 요구하며 저항해도 조선일보의 말처럼 박근혜 시대는 가고 있다. 동시에 진보와 보수가 함께한 유례없는 ‘적과의 동침’, 반박근혜 전선도 이제 종료된다. 조선일보와 한겨레, 보수와 진보언론이 광장의 국민과 함께한 11월 촛불항쟁의 ‘덤’이 차후 국면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11월 투쟁의 동력의 절반은 우리 것이 아니다. 조중동은 겨울이 오면 광장의 촛불은 경제와 국익을 해친다고 공격할 것이다. 대통령 퇴진 문제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정치권의 탄핵과 특검, 국회 청문회에 맡기자고 할 것이다. 책임총리를 선출하여 국가혼란을 수습하고 무너지는 경제를 살리고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조기 개헌으로 막자고 할 것이다.
1979년 10.26 이후 전두환 신군부가 12.12쿠데타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는 데는 두 달이 채 안 걸렸다. 37년이 지난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서 신군부가 아니라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 신보수와의 투쟁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진짜 힘든 ‘본선’이 시작되는 것이다. 80년 민주화의 봄과 함께 5월 광주민중항쟁까지 전진했던 국민은 박정희와 싸운 것이 아니라 신군부와 싸웠다. 물론 우리 국민은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민주주의 정치의식은 비상히 높아졌고 군대로 국민을 제압하는 야만의 시대도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새롭게 변신한 신보수를 상대로 한 지능전과 장기전을 앞두고 있다. 이 투쟁에서 온전히 진보개혁 세력의 역량으로 주도권을 잡아야 국민혁명은 승리하고 민주정부 수립의 길이 비로소 열린다.
7. 조기 대선, 민주적 정권교체 후 개헌!
대단한 국민들이다. 한국 진보진영의 분열과 야당의 부족한 지도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누구도 예상 못한 4.13총선 승리로 새누리당을 붕괴 직전으로 몰았고, 대중투쟁이 필요할 때 어김없이 광화문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웠다.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이다. 사실 진보도 보수도 모두가 놀랐다. 지역, 계층,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전례 없이 새로운 청년세대가 민주주의 대열에 급속히 합류하고 있다.
국민들은 현 시국을 이미 4.19, 80년 광주민중항쟁, 87년 6월 항쟁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공화국을 만들자는 국민들의 열기가 분출하고 있다. 국민들은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며 국민의 힘으로 범법자 체포를 요구하고 이제 하야가 아니라 박근혜 강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혁명의 다음 과제는 신보수가 전방위로 전개할 정략적 조기 개헌 시도와 야당의 개헌 야합 꼼수를 파탄 내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다. 민주당의 친노 문재인 진영을 제외하면, 나머지 여야는 정국 추이에 따라 모두 개헌 합의가 가능한 세력들이다. 국민들이 광장의 저항과 촛불을 철수하고 ‘조기 대선, 민주적 정권교체 후 국민개헌’을 강력히 주장하지 않는다면 주도권은 신보수에게 넘어간다. 개헌 논의가 시작하는 순간 탄핵 국면은 개헌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신보수가 노리는 바다.
8. 몰려오는 파도, 평화협정 가능성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변화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한국과 관련하여 FTA 재협상,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언급했다. 하지만 차기 미국 행정부의 주요 관심사는 대북 적대정책의 유지여부다. 트럼프가 대러시아 정책에 있어 오바마의 반(反)러 기조를 전환하리란 것은 이미 선거기간에 공공연히 밝혀온 터다. 문제는 이중적으로 언급한 대조선(북한) 대응인데, 이것이 트럼프 대외정책의 최대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정책이 가장 극명하게 전개될 지역이 바로 한(조선)반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관한 자세한 언급은 다음에 할 예정이다.
미국의 많은 외교안보분야 연구소들과 전문가들이 최근 조선(북한) 문제를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위 있는 미 외교협회의 최근 대북 정책보고서조차 주한미군 성격 변화와 감축, 그리고 평화협정 체결을 권유하고 있다. 대북 강경파이고 차기 국무장관 후보 중 하나인 존 볼턴은 최근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했다. 또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로 인해 북핵 문제가 미국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우려하는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도 북핵 위협을 우선순위로 다루겠다고 했다. 지난 오바마 행정부 출범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9. 국민혁명과 진보정당
한반도의 내외정세는 이렇게 급변하는데 야당은 안이하고 진보의 대응태세는 아직도 더디다. 미국과 보수의 속도와 준비태세보다 빠르지 않다. 보수는 총성 없는 쿠데타로 시민혁명의 위험을 감수하며 박근혜 정권과 친박 새누리당의 해체를 진행하고 있다. 개헌을 기치로 새 보수정당을 만드는 기획은 이미 시작되었다. 탄핵 국면이 진행되는 이후 3~6개월 이내, 늦어도 내년 봄에는 새로운 친미 보수정당이 나올 것으로 예측한다.
반면 야당은 대선승리 예감에 들떠 김칫국을 먼저 마시고 있고, 진보정당의 분열 상태는 쉽게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진보정당이 앞으로도 계속 사분오열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정국 주도권은 민주당과 새로 등장할 보수정당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다. 국민혁명은 장기전이다. 이제 겨우 시작이고 과제는 산 넘어 산이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정당이 대표한다. 국민대중이 아무리 진출해도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고, 자신을 일관되게 대변할 정당과 연합전선의 정치지도자를 만들지 못한다면 죽 쒀 개 주는 어이없는 형국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해체되고 신보수가 정비되는 그 기간 동안 진보도 단결하고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끝없이 동요하는 야당을 국민혁명 편으로 세워 민주적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진보와 보수는 지금 똑같이 시간싸움을 하고 있다. 한반도에 밀려오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를 넘어 이제는 평화통일로 나아가야한다. 새누리당과 같은 극(極)보수체제의 붕괴와 적대적 북미관계로 유지되던 분단체제가 동시에 급격한 변화를 맞을 가능성이 높은 대전환의 2017년이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시작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