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4일에 한 번꼴로 만나 '전교조 죽이기'를 모의했다
전교조,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공개 … 법외노조화 계획 지시 정황 담겨
- 매일노동뉴스 2016. 12. 6
청와대가 이른바 ‘전교조 죽이기’를 전방위적으로 기획하고 시행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가 나왔다. 전교조는 해직교사 9명에게 조합원 자격을 줬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 시정명령을 받았고, 이 명령을 거부했다가 소송에서 져 법외노조가 됐다.
전교조가 5일 공개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전교조에 대한 법원의 법외노조 1심 판결 결과를 두고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라고 표현했다. 정부가 특정노조를 불법화하려는 계획을 치밀히 세우고 이행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전교조 생존 경시할 수 없어"
전교조는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노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망록을 공개했다. 비망록은 전교조가 김영한 전 수석 유족의 동의를 얻어 확보했다.
▲ 변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왼쪽)이 5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회의실에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중 청와대의 전교조 탄압 정황이 담긴 메모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증거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정기훈 기자
비망록에는 2014년 6월 15일부터 같은해 12월 1일까지 김영한 전 수석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등에 참석해 기록한 메모가 담겨 있다. 5개월 보름 동안 전교조 관련 메모가 등장하는 날은 총 42일치나 된다. 4일에 한 번꼴이다. 김영한 전 수석은 “장(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추정)”과 “령”(박근혜 대통령 추정)으로 구분해 회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겼다.
전교조는 비망록 6월 15일자에 처음 등장했다. 김영한 전 수석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으로 “전교조 재판-6월 19일 중요, 승소시 강력한 집행”, “재판 집행 철저히-YS 시절 잘못 교훈 삼아 의지. 수석, 관계부처-독려”라고 기록했다. 그해 6월 19일에 예정됐던 1심 재판에 대응하고 승소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동계 총파업 뒤 노동법 날치기에 사과하고 원상태로 돌렸던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히 대처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서울행정법원은 같은달 19일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하자 전교조 서버 압수수색, 김정훈 전 위원장 구속영장 청구, 노조 전임자 휴직허가 취소 같은 ‘강력한 집행’이 뒤따랐다.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 사항은 판결 다음날 비망록에도 등장한다. 김영한 전 수석은 “강력한 의지로 법집행. 전교조 생존 문제로 경시할 수 없어”라고 적었다.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이용기 전교조 정책실장은 이에 대해 “1심 재판 결과를 계기로 정부가 전교조를 이번엔 반드시 죽이겠다고 한 것”이라며 “긴 프로세스라는 표현은 집권 세력이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를 오랫동안 기획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1심 판결 이후 이어진 전교조 조합원들의 조퇴투쟁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단호한 대처”, “상응한 불이익이 가도록 일관성 있게”라고 적혔다.
전교조 선거, 4대 국정현안 중 첫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는 계속됐다. 8월 2일자 비망록에는 “전교조 미복귀자 징계-직무 이행 명령”, “교육부 장관 직권면직 대(代)집행”이라는 문구다. 이후 교육부는 전교조 전임자 34명을 직권면직했다. 8월 말부터 작성된 비망록에는 국정교과서와 세월호 계기수업과 관련해 전교조가 자주 등장했다. 같은해 9월 19일 서울고등법원이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자 비망록에 다시 전교조의 이름이 가득찼다.
같은달 24일 김기춘 전 실장은 “전교조 관련 탄원서. 다다익선”, “헌재에 전교조 제기 헌소 등 2건 동시 계류-고용노동부 지원”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청와대가 보수단체나 노동부를 동원에 법원 판단에 압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이다. 비망록대로 여러 보수단체들이 같은달 30일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박근혜를 적시한 전교조 관련 메모는 2번 등장한다. “교육부 지방 재정 효율화 T/F-교육감 좌파적 낭비 시정(7월 14일)”과 “전교조 위원장 선거(12월 1일)”가 그것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12월 1일자 비망록에는 박근혜가 언급한 4대 국정현안이 기록됐는데, 그중 첫 번째가 전교조 위원장 선거였다”고 설명했다. 선거 후 노동부는 전교조의 대표자 변경신고를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반려했다. 강영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비망록을 통해 노동부가 자주적 의사를 갖고 법외노조를 통보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났다”며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박근혜를 직권남용죄로 형사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