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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은 잠을 이루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된 불면도 아니고 치통이 심해서도 아닐 겁니다.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낯선 감정이 쉬이 가슴에다 핏날을 세우는 거지요. 정말 그럴 것 같은 서늘함을 느끼는 날입니다.

집을 나서기로 했습니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이 늦은 시간에 아직은 두터워 보이는 점퍼를 입고 단정하지 못한 머리카락은 카키색 모자에 감추고 바지 포켓에 두 손을 꾹 집어 넣고는 어둠이 짙은 거리로 나서기로 했습니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저 뒷편의 주택가에 이르기까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오토바이나 택시가 지나가면서 강한 전조등과 함께 적당히 귀를 긁는 엔진소음만이 함께 할 따름입니다.

이왕 나선 걸음이라 생각하고 충대 중문까지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래 저래 걸으며 나름대로 사색을 하고 있는 중에 키노피아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몇 명의 젊은 커플들의 모습을 보니 한결같이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습니다. 아마도 함께 해서 좋았던 친구나 애인에 대한 만족감의 표현일 겁니다. 그런데 저기 멀리서 아주 맛좋게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무는 젊은이가 보입니다.


햐~ 갑자기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게 되네요. 중독성인지, 전염성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들이 물고 있는 모습이나 커피를 한잔 한 이후, 한잔의 술을 털어 넣은 다음에는 여지없이 생각나는 것이 담배입니다. 그러고 보면 담배가 중독성이라든가 전염성이 있다는 말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겠네요.

저기 늦은 시간에도 밝게 켜진 간판이 보입니다. 아~ 중문에서는 가장 장사가 잘 된다는 형님 가게의 간판인가 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가게 안쪽의 상황을 살펴 봅니다. 저기 주방 한쪽에는 가게 문을 아직 닫지 못한 형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 봐도 바쁘게 놀리고 있는 손에는 익숙함이 느껴집니다. 반가운 마음과는 달리 새로운 직장 때문에 가게를 그만 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인사차 들어 간다는 것이 선뜻 내키질 않습니다. 가게 앞에는 대형 편의점에서 설치해 놓은 파라솔이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맥주 패트와 과자 부스러기를 놓고 시간을 달래고 있는 청춘들의 지붕이 되어주고 있네요.

살며시 고개를 돌려 충대 중문의 중심골목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미 얼큰하게 취한 젊은 친구들은 2차나 3차를 하기 위해 비틀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야구연습장에서는 헛스윙과 공을 맞히는 타격성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저 한쪽 끝에서는 인형을 타기 위해 총을 쏘고 있는 군복 입은 청년과 그것도 못맞추냐면서 등짝을 두드리고 있는 애인인 듯한 여성의 토닥거림이 정겨워 보입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근처에 있는 유원지에서는 언제나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인데 말입니다.

곳곳에 있는 편의점에는 담배나 아이스크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전단홍보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각자 가지고 나온 주점의 전단지를 오가는 행인들에게 열심히 뿌리고 있습니다. 어? 자세히 보니 손으로 쥐어주는 것보다 그냥 길거리에 뿌리는 것이 많네요. 아마도 그와 같은 행동 자체가 홍보활동인가 봅니다. 그러면서도 저만치 불빛이 닿지 않는 구석의 한 켠에서는 술에 취했는지 토하는 여학생이 보이는데 두 명의 일행이 연신 등을 두들겨 주고 있습니다. 할머니 한분은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포대기로 감싸 안은 아이를 업고는 자장자 부르기에 열심입니다. 아마도 낮밤이 바뀌어 투정을 부리고 있는 아이를 다래주는 수고로움이겠지요.

골목을 비추는 수많은 간판과 네온의 불빛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환한 낮처럼 생동감이 있어 보입니다. 그것도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넘어 이 추운 계절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러한 젊은이들의 밤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잠해지고, 그제서야 골목 입구를 점령한 떡복이며 어묵을 파는 개량차량도 철수를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술을 더 먹자고 일행과 흥정하는 모습, 당구를 치러가자고 졸라대는 모습, 노래방에서 한 시간만 더 놀다 가자고 제안하는 모습, 게임방에서 써든같은 슈팅게임이나 RPG 게임을 하자면서 끌고가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충대 중문에는 밤이 없습니다. 아니, 낮보다 밤이 더 생동감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시간도 내일의 아침으로 이어지고 있는 거겠지요.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