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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지난주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간 동안 개인적으로는 아주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라는 것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아이의 취학통지서를 여태껏 수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안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른 가정에서는 다 받고 있는 그 취학통지서를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구경도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사실 자체도 어떤 안내문을 통해 받게 된 것이 아니라 또래의 자녀를 교육하는 블로거님들의 일상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니 더욱 민망할 따름입니다.

어찌되었건 블로그를 운영함으로써 인터넷을 통해 접하게 된 정보이다 보니 심적으로는 약간의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나 봅니다. 어느 가정에서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어야 할 학부모가 되는 순간을 어쩌면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겠지요. 작년에는 우편으로 수령했던 기억 때문에 오늘도 저는 1층 현관에 있는 우편함을 몇 번이나 살펴보고 난 다음에야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욕실에 들어가 오늘의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난 뒤 TV에 전원을 넣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초인종이 울립니다. 도대체 누구일까요? 문을 열어보니 귀하게 보이는 중년의 한 부인이 서 계십니다.

“저...... 무슨 일로...?...”
“아! 이런. 제가 여기 통장이예요. 이것 때문에......”





아주 간단하게 말씀을 하시며 뭔가 싶은 서류를 하나 건네주십니다. 일단 믿음을 갖게 하는 억양과 말투는 귀부인께서 내미는 서류가 중요한 것이라는 걸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여기. 이 집에 신학년에 초등학교 들어갈 자녀가 있죠?
“네. 내년에 입학시킬 겁니다."
“그러니까요. 이게 취학통지서예요. 꼼꼼하게 입학에 필요한 사항대로 따라주시길 바래요."
“네? 아...... 네...... 고맙습니다.”





얼떨결에 인사까지 드리고 난 다음에야 이토록 늦은 시간에 통장이 꼭 전달해야만 했던 서류를 살짝 들춰보았습니다. 헉...... 그렇게 궁금해 하면서 기다려 왔던 취학통지서입니다. 이제야 체증처럼 가슴에 놓여 있던 불안감이 걷혀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뭔가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던 압박감이 ‘쓰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단 다급하게 느껴졌던 생활에서의 불똥을 꺼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수더분한 얼굴의 귀부인께 감사하는 마음이 번져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아! 그렇습니다. 이곳 아파트로 이사온 지 벌써 26개월이 넘어가고 있는데 오늘에야 처음으로 통장님의 얼굴을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오늘 뵙지 못했다면 제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의 여통장님을 어쩌면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갈 때까지 뵐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너무나 큰 고마움이 앞섭니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이 늦은 시간에 직접 보호자에게 전달해 주시려고 방문을 하셨다는 것은 낮 시간에도 몇 번을 다녀가셨다는 의미일 겁니다. 제 스스로가 먼저 챙겼어야 할 아주 중요한 것임에도 단지 바쁘다는 이유같지 않은 핑계를 내세워 선뜻 나서지 않는 불찰이 너무나 큰 것 같습니다. 또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줌 도움이 되지 않을 게으름의 그림자를 여지껏 잘라내지 못하고 키워만 갔다는 것 또한 반성을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가까운 이웃은 먼 친척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는 진리는 분명히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아침이나 저녁, 또는 날씨를 핑계 삼아 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사치스럽다는 걸 강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라도 살갑게 던지는 낯선 사람의 반가운 인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괜한 오해를 조장하고 있는 이 사회에 돌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안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었으니 다행입니다. 내일부터는 오며 가며 뵐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가벼운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제가 던진 인사에 대한 호응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더욱 더 반갑게 다가서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지요?”
“옷을 얇게 입으셨네요.”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거울을 보면서 부지런히 웃음이 섞인 인사말을 연습하는 지금, 입꼬리에는 경련이 묻어나고 몸살기 가득한 목소리는 쉴새없이 떨림만 가득차 있지만 가상으로 마주하고 있는 통장님과 이웃 분들께 드리는 인사는 이렇듯 차가운 겨울밤 동안에도 절대 그치지는 않을 겁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