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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 푸른 해>는 ‘의문의 아이, 의문의 사건과 마주한 한 여자가 시(詩)를 단서로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소개에 걸맞게 장르물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극본을 맡고 있는 도현정 작가는 무게감 있는 서사와 극적 장치를 긴장감 있게 버무리고 있다.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의 연출과 배우들의 흡인력 있는 연기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한몫하고 있다. 현재까지 방영분의 평균 시청률은 4~5%대에 머물고 있지만, 화제성을 타고 반등을 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도현정 작가는 지난 2007년 MBC <케 세라 세라>에서 사랑과 조건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와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당시 연출을 맡은 김윤철 PD가 한 인터뷰에서 “클리셰란 클리셰는 다 끌어들였다”라고 말할 만큼 재벌 2세, 사각 관계를 다뤘다.


도 작가는 진부한 소재를 인물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관습적이지 않은 멜로로 풀어내 다수의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도 작가가 표현하는 인물의 감정선은 장르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 2003년에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 - 늪>에서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아내가 남편과 남편의 정부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를 다뤄 몬테카를로 TV페스티벌에서 최고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SBS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에서는 원어민 교사 한소윤(문근영 분)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시체를 발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한소윤은 사건을 파고들수록 무심함에서 분노가 뒤섞인 감정선으로 뒤바뀌며 마을에 팽배한 배척과 불신을 발견한다.



도 작가는 <붉은 달 푸른 해>에서 평범한 주인공을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으로 앞세워 흡입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차우경(김선아 분)의 삶은 그럴듯하다. 번듯한 남편을 둔 아내, 딸의 엄마로서 말이다. 그러나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벌어진 교통사고로 우경의 삶은 산산조각이 난다. 소년의 죽음, 남편의 불륜, 그리고 초록색 원피스 여자아이의 환영이 수시로 나타나면서 우경의 세계에 균열이 생긴다.


아이가 유산되고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아동 상담을 재개한 우경은 같은 반 친구를 계단에서 밀어 떨어지게 한 아이 시완을 상담하게 된다. 예전에 엄마가 먼저 상담을 거부했던 아이다. 초록색 원피스 여자아이도 우경의 곁을 맴돈다.


우경이 아이에게 “네가 정말로 진짜면 내가 구해줄게”라고 말하자 상담실 천장의 얼룩진 곳에서 물이 쏟아지는 환시가 나타난다. 학대당한 아이들의 연이은 등장과 흩어져있는 살인사건의 퍼즐 조각은 아동 상담사인 우경을 자꾸만 흔들고, 우경은 “아이를 찾아야죠”라며 알 수 없는 사건에 뛰어든다.


도 작가는 이번 드라마에서 극적 긴장감을 한층 더 강하게 불어넣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극적 장치는 ‘시(詩)’다. 첫 회에서 등장한 시인 서정주의 시 <문둥이> 중 ‘보리밭에 달 뜨면’이라는 시의 구절은 아동학대 살해 피의자 박지혜와 무연고 소년의 죽음에서 똑같이 발견된 문구다. 가난에 시달리던 한 여자가 남편의 죽음에 사망보험금 증서를 끌어안고 깔깔대는 모습에서 서정주의 또 다른 시 <입맞춤> 중 ‘짐승스런 웃음은 울음보다 달더라’라는 시의 구절이 나온다.


또 시인 천상병의 시 <무명전사> 중 ‘썩어서 흐무러진 그 살의 무게는’이라는 구절은 미라 상태의 여자 시체가 발견된 곳 벽면에 스프레이로 쓰여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시구는 단순히 소재로 휘발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궁의 살인사건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시청자에게 정서적 감응을 일으키고 있다. 시적 긴장이 드라마의 몰입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 <붉은 달 푸른 해>에서 벌어진 여러 살인사건의 실체와 범인의 정체는 묘연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오로지 범인을 ‘잡는 게’ 목표가 아니라 우경의 심리적 각성과 함께 긴장감과 흡입력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붉은 달 푸른 해>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PD저널 - ‘붉은 달 푸른 해’, 기지개 켜는 MBC 장르물 : 2018. 12. 05.]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