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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근성은 지금 세대보다 어느 정도 자신들이 먹을 밥그릇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에게 더 크게 존재하고 있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이라는 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씁쓸하기만 합니다.

아마 그때가 1998년 가을 쯤 되었을 겁니다. 제가 결혼을 했던 해였기 때문에 틀림이 없을 겁니다. 직장에 출근하기 바로 전 새벽까지 저는 TV를 통해 LPGA에서 얼굴을 처음 보였던 박세리 선수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동안 숨가쁘게 우승을 놓고 다투어 오던 박세리 선수가 어느 순간 날린 샷이 연못 비슷한 곳으로 빠져 버렸지 뭡니까?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벌타를 받고 포기를 하기 마련일 텐데 훗날 영웅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박세리 선수의 감동의 장면이 나오는 순간입니다. 신발을 벗고, 게다가 양말까지 훌훌 벗어 던지고는 한 발을 물 속에 담근 상태에서 또 다른 발로 하여금 지극히 어려운 자세에서의 중심을 잡더니만 멋지게 거둬올림으로써 연못 탈출에 성공합니다.





결국 우승 트로피는 그녀의 품에 안겨 그녀의 키스를 받게 되었지요. 너무나 감격스러웠고, 너무나 통쾌했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이후 언론의 재탕과 소개로 인해 그 감동은 점점 희석되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동계 스포츠는 굉장히 열악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매 대회마다 쇼트트랙에 관해서는 무적을 자랑해 왔습니다. 양궁과 함께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는 것 자체가 세계대회에서의 매달을 약속할 정도였으니까요.





어느 날이었던가요? 안톤 오노에게 금매달을 강탈당한 김동성 사건을 보면서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기 전까지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 그 빌어먹을 대한민국 빙상연맹이 아니었나요? 그런 연맹이 뭔 낯짝이 있어 또다시 자기들만의 밥그릇 채우기 행정에 열을 올리고 있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냐면 생전 들어보도 못한 피겨 스케이팅 원로인지 뭔지하는 작자들이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피겨 스케이팅 부문을 별도로 분리하여 피겨스케이팅연맹이라는 것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정말로 제 자신이 벙어리에 귀먹어리가 되고 싶은 마음만 절실해질 뿐입니다.





왜 그들은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세계적으로도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록산느 탱고를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쥬니어 김연아는 태능선수촌에서도 배척받고 롯데월드에서 자비를 들여가며 일반인들 틈바구니 속에서 시즌 연습을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김연아란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녀를 아는 사람도 없었고, 거들떠 보는 사람은 더욱이 없었습니다. 스폰서 하나 없었기에 스케이트 부츠와 칼날은 유일한 매니저겸 후원자였던 김연아의 엄마가 나름대로 눈대중으로 보아왔던 것을 토대로 토닥토닥 손보는 정도로 그쳤을 뿐이었고, 세계대회로 나가는 비행기 티켓 역시 자비를 털어 참가했습니다. 정말로 그 누구도 어린 연아선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 지금은 어떤가요? 어느 사이엔가 세계 피겨의 역사는 김연아 선수가 쓰고 있습니다. 그 잘난 빙상연맹에서조차 후원금을 지원하기는 커녕 세계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일정 부분 갈취만 했던 기관입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잘했다고 그 빙상연맹보다도 더한 놈들이 나서서 피겨스케이팅연맹을 창설하겠다고 나서는 것인지요? 정녕 그들이 피겨스케이팅이 뭔지 알고 있기나 한 사람들입니까? 연아 선수가 있기 전까지 언제 우리나라에서 피겨로 아시아권에서조차 특별한 실적을 보였던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관심이라는 것을 약에 쓰려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는데 뭐 이제와서 그 크지도 않은 빙상연맹에서 또 피겨연맹을 분리, 독립까지 해가면서 피겨를 부흥시키겠다고 난리를 치는 겁니까? 막말로 쇼트트랙 국가대표 파문으로 빙상연맹의 엿같은 행정은 이미 만천하에 알려졌습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이젠 별 떨거지 같은 것들이 연아 선수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고 난리를 친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겠지요. 지금 당장에는 그래도 무슨 떡고물이라도 당분간 떨어질 것 같으니까 개폼 잡으며 목소리 한번 내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채우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럼 한가지만 물어봅시다. 그럴 가능성은 제로 퍼센트이겠지만 막말로 김연아가 이번 올림픽 시즌 이후에 은퇴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연아 선수 이후 기대를 걸만한 다음 주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난리 병을 떨고 있는 피겨연맹이 김연아 이후 상황을 직면하고서도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투자도 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또 어느 시점이 되면 흐지부지 연맹이 깨져 버리고 '누가 잘났네, 누가 깨버렸네' 하면서 서로의 얼굴에 오물을 뒤집어 씌우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을 자신은 있는 겁니까?

지금 세계 피겨의 관심은 연아선수에게 쏠려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세계 피겨인들이 예상하고 있듯이 앞으로의 기록 자체도 연아 선수 자신이 아니면 새롭게 이어갈수도 없지요. 그만큼 연아 선수의 기량과 에너지가 가지는 의미는 대단한 거지요. 그러니 제발 "눈가리고 아웅"하는 졸속행정을 탈피하시고, 그렇게 피겨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다고 하신다면 앞으로 국내대회나 국제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숨어있는 꿈나무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한층 키워주는 방법으로 선회하는 것은 어떠신가 하고 한 번 여쭙고 싶은 겁니다.

왜요? 직접적으로 찔리는 질문을 드리니 하실 말씀이 군색해지시나요? 그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투자를 하기에는 겁이 난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요. 쌀을 익혀 밥을 만들어야지 다 지어논 밥에 숟가락을 들고 행사를 하려고 드니까 눈에 차지 않는 것 아닙니까? 제발 정신들 좀 차리세요.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