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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부자였으면 하는 생각은 많이 갖지 못한 사람일수록 더 소망하게 되는가 봅니다. 추워지는 날씨 탓에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보니 모든 생각 자체가 생활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핑계처럼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 유치원에 다니는 두 딸아이의 성탄절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 24일은 아이들이 다니는 병설유치원의 겨울 방학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그 전날부터 아빠, 엄마를 위해 준비했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목청 높여 읽어주고 나서는 곧바로 자신들의 공부방 문고리에다 아주 소박한 장식을 하기 시작했지요. 무엇보다 오렌지빛깔 도화지로 오려 만든 양말 모양에 빼곡하게 적은 소원은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바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가면서 아이들은 선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어 하면서 잠을 뒤척이게 되었지요.


산타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제 이름 예린이에요. 엄마 아빠 말씀을 잘듣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내년에는 잘할게요. 메리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트리 그림) 선물도 받고 싶어요. *^^* (선물 그림)



그리고 성탄절 아침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엄마는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를 미뤘었고, 어이없게 빈손이 되어야 했던 아빠, 엄마의 게으름 때문에 일찍 잠에서 깬 아이들은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자신들이 정성껏 준비한 도화지 양말 밑에는 아무런 선물이 놓여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빠와 엄마는 당황하게 되었고, 아이들 눈을 피해 서로 원망의 눈짓만 주고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근무가 있는 아내는 출근하는 길에 무거운 마음으로 아이들 손을 이끌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본가로 향했습니다. 곧바로 저 역시 빠르게 옷을 챙겨 입고는 늦게나마 아이들 선물을 마련하러 성안동 홈플러스로 달려갔지요. 큰아이가 소원하였던 닌텐도는 경제적 부담과 함께 아직은 사용연령에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에 올해의 선물 목록에서는 지우기로 했습니다. 대신 며칠 전에 슬쩍 아이들 생각을 물어 미리 알아두었던 점핑클레이 중 좋아할 만한 것 두 종류와 함께 며칠 뒤에 있을 큰아이의 생일 선물까지 챙겼습니다.

저녁 무렵,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담은 채 아이들을 데리러 본가에 들렀더니 그냥 할머니와 함께 자고 싶다고 합니다. 어머니 역시 날씨도 추운데 감기 기운까지 있는 아이들만 고생된다며 그냥 재우라고 하십니다. 뒤늦게나마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발견하게 하여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어째 돌아가는 상황은 제 마음처럼 여의치가 않습니다. 몇 번이나 달콤한 말로써 유혹을 해보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할머니와 자는 것으로 굳혀져 있더랍니다.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아내는 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고 오려 했지만 일찌감치 잠이 든 탓에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돌아와야만 했지요. 뭐, 어쩌겠습니까? 차라리 잘됐다고, 깨끗하게 집안 대청소나 한 번 더 해놓고 나서 아이들 기분도 풀어줄겸 해서 찜질방이나 다녀오자고 다독거렸지요.

오늘은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계속적으로 전화가 옵니다. 아빠, 엄마와 떨어져 있은지 무려 3일째가 되다 보니 보고 싶은 것도 있었겠지만 할머니로부터 아빠, 엄마가 찜질방에 데리고 갈 거라는 말씀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것처럼 그야말로 숨도 쉬지 않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고, 세탁기도 두 번이나 돌려 건조대에 가득하게 빨래를 널어놓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찜질방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찜질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500원짜리를 넣으면 20분을 할 수 있다는 컴퓨터까지 해가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애들은 애들인가 봅니다.

꽤 많은 시간을 찜질방에서 보내고 집을 향해 나서려는데 어느새 청주의 거리는 엄청나게 내린 눈으로 그야말로 순백의 도시로 변모해 있었고, 기온까지 제법 내려가 있습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집에서 저녁을 해먹는다는 것이 갑자기 영 귀찮아집니다. 그런 마음이 담겨 반짝이는 아내와 제 눈빛은 아주 많이 닮아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한명씩 책임지고 손을 꼭 잡고서는 몇 번 갔었던 등뼈전골집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정합니다. 그렇게 맛있게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니......







화장실에서 양치와 세수를 하고 나온 아이들이 공부방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집안이 온통 떠내려 갈 듯한 즐거운 비명을 질러댑니다. 그렇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남긴 선물과 카드 때문이지요. 시간을 보니 저녁 8시 30분. 이틀 아니 3일을 늦게 선물을 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줘야 되겠다는 생각에 1시간만 마음껏 놀 시간을 주기로 합니다.


큰애가 점핑클레이로 만든 꽃


작은애가 점핑클레이로 만든 눈사람



유치원에서 만들어봤기 때문인지 세상에나 아빠, 엄마도 만들지 못할 것 같은 아기자기한 눈사람과 꽃잎을 쉬지 않고 만들어냅니다. 점핑클레이 제품 상자 안에 있는 함께 들어있는 자석 소품을 능숙하게 사용하면서 냉장고에 붙일 수 있는 용도로 완성시키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내와 저는 아이들에 대해 미처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더군요. 그렇게 늦은 크리스마스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된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날이 지나가는 밤에 선물을 놓고 가신 것으로 알게 된 것이나마 다행이다 싶어지네요. 자야 될 시간이 되어 올 때 아이들에게 살며시 물어봅니다. "왜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 할아버지가 오지 않았을까?" 라고요.





“네, 선생님이 그러셨는데요. 그리스마스 이브에 오시는 산타 할아버지도 있고, 크리스마스에 오시는 산타 할아버지도 있다요.”

먼저 작은애가 선물을 받은 기쁨에 열이 올랐는지 발그스름한 볼에 보조개까지 보이며 큰 소리로 재잘댑니다. 큰애 역시 동생에게 지는 것이 싫어서인지, 아니면 조금 더 컸다고 언니 행세를 하려고 그러는지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는군요.

“저희가요. 아빠, 엄마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산타 할아버지가 처음에는 선물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가 저희가 너무 슬퍼하니까 나중에 준 거 같아요.”

큰애의 말을 듣자마자 가슴 속에서는 '쿵~!'하는 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들려옵니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던 거죠.

‘미안하다. 얘들아. 산타 할아버지가 예쁜 너희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야 할 시간에 하필이면 먹고 사는 거에만 신경을 쓰느라 너희까지 미처 챙기지 못했구나. 그리고 너희는 정말 아빠, 엄마 말도 잘 듣는 너무나 착한 아이들이란다. 너희가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아빠, 엄마 말을 잘 들어 준다면 이 산타 아빠, 엄마는 기뻐서 매일같이 춤도 출 수 있을 거란다. 이 나쁜 산타 아빠, 엄마를 올해는 용서해주렴. 내년에는 올해 늦은 선물로 너희 마음을 상하게 했던 것에 대한 보상으로 일찌감치 너희가 갖고 싶은 선물을 미리 준비해 놓도록 할게. 그리고 늦은 선물을 받고도 실망하지 않고 그토록이나 좋아해 주고 즐거워해 줘서 너무나 고맙구나. 얘들아! 아빠, 엄마는 정말로 너희들을 사랑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