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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뜨듯이 시작하는 아침의 햇살이나 마무리 하는 한밤의 어둠 속에서 항상 제 곁을 맴돌고 있는 존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아내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존재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가끔은 숨쉬는데 필요한 한줌의 공기처럼, 갈증을 이겨내는데 쓰이는 한 모금의 물처럼 그 가치가 희석될 때도 많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아내를 우선적으로 생각해보려 합니다. 얼마 전 정겨운 이웃님이신 파아란기쁨님께서 소개해 주셨던 '어느 스님의 주례사'라는 제목의 포스트(http://momnpapa.textcube.com/350)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내 여자를 최우선으로 하고, 아이가 세 살이 되기 전에는 2순위이지만 세 살이 넘어가면 부모가 2순위이며, 아이가 3순위'라는 글귀를 읽고 크게 공감했던 바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 전부터 아내는 독서를 무척이나 즐겼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도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독서로 시간을 보냈지요. 그런 아내가 혹시 우울증의 초기단계가 아닐까 싶은 걱정 때문에 저는 몇번이나 활동적인 취미를 갖도록 유도했었고 말입니다.

그러나 독서에 몰입하는 생활은 시간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지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더군요. 그래도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는 블로그도 조금씩 운영하는 것 같더니만 12월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고, 지금은 현실의 세상보다 책 속의 가상공간이 더 좋은지 다시 책과의 동침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틀 전 심야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내는 그날도 늦게까지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내일을 위해 저는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환하게 밝혀진 방안에서 겨우 잠이 들려는 순간 우리 부부 사이에서 자고있는 두 딸아이를 힘차게 넘어온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예린아빠. 불 좀 꺼줄래요?"
"......"
"오빠. 저 졸려서 자야겠어요. 불 좀 꺼주세요."
"......"

잠결에 들린 목소리에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냥 그렇게 잠든 척 하고 있었는데 불을 꺼달라는 말을 마친 아내는 그 다음으로 이어질 어떤 행동이나 말을 생략해버렸고, 갑자기 찾아온 너무나 고요한 침묵만이 무겁게 흐르고 있습니다. 잠시의 고민 끝에 형광등 스위치 쪽에 가까운 잠자리를 하고 있던 저는 아내가 피곤해서 그러는갑다 싶어 "끙~" 소리와 함께 불을 끄고 얼른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지요.

"으하하하하...... 아...... 배 아파. 어떡해? 오빠...... 으하하하하~"

갑자기 웃음보가 터진 아내는 크게 소리를 내면서 웃기 시작합니다. 왜 그런가 싶어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아내의 얼굴이 있을만한 지점에 시선을 맞추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어보았지요.

"아니. 뭐 잘못 먹었어? 갑자기 미친사람처럼 왜 그렇게 웃어재껴? 사람 놀라게스리......"
"그게. 그게 아니라...... 으흐흐...... 으하하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웃던 아내가 말을 합니다. 아내는 제가 이미 잠들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래도 불을 끄러 가는 게 귀찮아진 아내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번 해본 말이라더군요. 남편에게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이제 막 불을 끄려 일어 서려는데 뭔가 시커먼 덩어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불을 끄고는 꽁지빠진 강아지마냥 이불 속으로 쏙하고 들어가더라는 겁니다. 그 모습이 순간적으로 그렇게 웃겨 보이면서도 귀엽게(?) 보이더라나요?

"이런. 실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애써 기운빼지 말고 어여 잠이나 자."

뭔가 심하게 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아내에게 곱지 않은 말로 타박을 함과 동시에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 올리는 것 뿐이지요.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겨우 머리 꼭지에서 눈꺼풀까지 내려왔던 잠은 쉽게 몰려들지 않습니다. 멀뚱멀뚱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데 아주 맛있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아내의 낮은 코골이입니다. 순간 약이 올라 밉게 보이는 아내입니다만 대화를 끝낸지 채 스물도 세지 못할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잠이 들어버리는 아내의 피곤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애처로운 마음에 공연히 잘 자고 있는 아이들을 토닥이면서 밖으로 살짝 빠져나온 손을 이불 속으로 다시 여미어줍니다.

잠시 호쾌하게 웃음을 보였던 아내는 잠을 자는 내내 즐겁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왕이면 연애시절 두근거렸던 감정을 살려낼 수 있는 좋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네요. 열두 해를 한 이불을 덮고 살아가면서 연애감정이라는 것도 많이 퇴색되었는지 이제는 약에 쓰려 해도 찾기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지만 애써 우김질을 해보자면 이런 것도 연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아내와의 연애는 진행중이라 할 수 있겠지요?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