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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우리집 큰아이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해야 되겠군요.

우리집 큰애는 그날의 분위기에 맞춰 주변 사람들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재주가 있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지간해서는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만 살살 긁어주는가 하면 또 어느 사이에 눈치를 채는 사람마저도 특별히 기분 나쁘지 않게끔 얼버무리는 묘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항상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당하는 입장에 있다고 해서 눈치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집에서는 우리 딸내미들이 그렇고 제가 그렇습니다.

글쎄요. 우리 집에서 두 딸아이를 표현하는 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느 가정에서나 마찬가지로 우리 두 딸아이도 집안에서는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아이랍니다. 일명 웬수라고 하는 표현 자체가 못견디도록 귀여운 자녀한테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큰애가 항상 입에 달고 있는 말이 있으니 바로 "아빠가 해주는 음식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사실 큰애가 하는 그 말은 최면효과도 상당히 작용합니다. 어쩔 때는 아내가 하는 음식이 맛없게 느껴져 다음날에는 스스로 한 번 만들어 보는 실험도 하게 되니 말입니다.

어젯밤에도 역시 큰아이가 "아빠. 엄마 생일날 끓여주신 미역국 있잖아요. 그거 정말 맛있었어요. 지금도 맛있는 그 미역국이 가끔 생각나는 걸요. 그래서 내일은 제 생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제 생일날에도 아빠가 미역국을 끓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빠의 미역국은 정말로 맛있거든요. 내일 아빠가 끓여주신 미역국이 정말 먹고 싶어요."라는 합니다. 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어느 다른 곳으로 비껴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또 비껴갈 길이 분명히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피해갈 마음이 솔직히 들지도 않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미역국이 뭐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맛있다고 해봐야 다 거기서 거기겠지요. 누가 끓인다고 해서 특별히 더 좋은 맛이 나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큰애가 하는 말을 듣는 아빠의 입장에서는 새삼스럽게 딸이라는 존재가 고맙다고 느끼기에는 절대 부족함이 없게 느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자기가 한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데 감격해 하지 않을 사람이 그 어디에 있을 것이며, 그것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내미의 말이라고 한다면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물어보나 마나 한가지 대답 밖에 더 있겠습니까?

'커~ 시원하다. 맑게 잘 끓였어요. 아빠."

이런...... 정말로 이런 웬수같은 딸을 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나 싶더군요. 솔직히 국그릇에 담아 내어놓은 뜨거운 국물에 혹여라도 입천장이 델까 걱정하고 있는 아빠에게 던질 수 있는 성격의 말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는 두딸을 보니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이왕에 준비한 생일 케익도 한컷 사진으로 담아봅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커서 생일파티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하면 증거(그냥 해본 소립니다.)로 내보여야 할 테니 말입니다.

저녁에는 아이들이 한참이나 가고 싶다고 졸랐던 집 근처의 음식점에서 생일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고기를 메뉴로 하고 있는 이곳의 좋은 점은 한창 제철로서 인기가 높은 석화를 무료로 무제한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테이블 당 한박스 이상 요청하는 곳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고기보다 해물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차라리 고기값에 해당하는 요금을 더 주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먹고 싶으니 석화박스에 빈 굴껍데기가 쌓일 때마다 새롭게 주문을 하게 되더랍니다.

첫번째 석화 박스

두번째 석화박스

세번째 석화박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슬쩍 내려다 보니 아내와 저는 4번째로 들여왔던 석화박스까지 깔끔하게 비웠더군요.
그걸 보는 순간 약간은 멋쩍은 기분과 함께 왠지 모를 뿌듯함이 넘쳐나더랍니다. 고기값이 아깝지 않다는 속물근성이었겠죠?
바람이 무척이나 차고 기온이 너무나 내려갔기에 택시를 타고 돌아오기로 했지요.
음식점에서 집에 까지 오는 택시 안에서의 2~3분 동안은 제게 많은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랑한다는 말을 부모가 자식한테 하는 것보다 자식이 부모한테 하는 것이 훨씬 부담을 덜 느끼고 그나마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부모로서 생일을 맞은 큰아이 뿐만 아니라 작은아이한테 까지 한마디만 더 하고 싶습니다.

"아빠는 너희를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것과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너희 편이라는 것을 알아주렴. 아빠는 언제나 너희를 사랑한단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