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30cm
2009년 2월 18일 SBS TV는 김수환 추기경 님의 일생을 되짚어보는 영상을 특집으로 방영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님의 생전 모습을 가슴 저미는 심정으로, 또 먹먹한 마음에 가슴 답답함을 느끼면서 시청을 하고 있던 중 불탄은 아주 깊숙히 각인되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나레이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
그렇게 성인으로 살아오셨던 추기경 님조차 얼마나 많은 고뇌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과, 얼마나 안타까운 희생으로 살아오셨겠습니까마는 그분 역시 인간이셨는지라 이와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말은 추기경 님 이전부터 알음알음 회자되던 말이었습니다. 다만, 그러려니 하면서 느낌으로 알지 못했고, 체험하지 못했으니 이해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여기에 한 발자욱 더 나가서 그보다 더 먼 거리도 있는데 그건 바로 '가슴에서 손발까지'라고 합니다. 가슴으로 느낀 것들을 행동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럼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을 왜 가슴에서는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요? 거기에 단 한가지 만의 이유를 댈 수는 없을 겁니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혹은 개인에게 놓여진 환경에 따라 대입시킬 수 있는 나름대로의 경우의 수가 여럿이 있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사랑에도 헌신과 희생으로 시작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스스로가 가진 욕심에서 비롯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외적으로 표현하는 말에는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공통점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그렇게도 먼 거리인지 저 역시 잠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람이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다스리기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뜻일 테지요. 감성은 이성의 영향을 받지만 올곧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이성으로써 감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이야기 역시 누차에 걸쳐 접했던 기억도 납니다.
허나, 그런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머리가 가슴을 버리고 살 수 없는 것 또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가슴에서부터 먼저 느끼면서 머리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무관심, 호감과 증오, 배려와 외면 역시 같은 맥락이겠지요.
정말로 머리와 가슴을 잇기까지가 어려운 것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맥놓고 이성과 감성이 분리된 채로 살아갈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뭐라도 해서 머리에서부터 가슴까지 이른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이해한 만큼 자연스레 그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겠지요.
당연하게도 아직까지 불탄은 그 말의 의미조차 알지를 못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쉽게 찾아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쉬운 거라면 앞서 고민하고 실천했던 그 분들께서 그리도 어렵사리 말씀을 꺼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기껏해야 어렴풋한 느낌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흘러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오롯이 채워가는 거라 했으니 일단 성실을 앞세워 보려 합니다. 뭐가 되었건 남길 수 있는 의미가 있다면 제가 살아가는 그 인생이라는 것도 쓸모 없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쉽게 포기해서도 안될 것이고, 또 쉽게 속단해서도 안되겠지요.
그 멀고도 멀다는 머리에서부터 가슴까지의 거리를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좁힐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반드시 별빛 터지는 환상같은 희열을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마음이 느낄 수 있는 눈이 의지와 상관없이 감기기 전에 꼭 알아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