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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설정으로 주연 배우로 하여금 '사랑해요"라는 말과 함께 키스를 하게끔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그 애틋한 장면에서 저마다의 목소리 죽이며 속으로 외치게 되지요.


"속지 마세요. 그(녀)는 지금 당신을 속이고 있어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당신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어요."
"나쁜 사람. 어쩌면 그렇게 애인의 마음을 가지고 놀 수가 있는 거야?"
"아! 나도 저런 사랑 한번이라도 해 봤으면......"


그렇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들어 놓은 설정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그 작품을 이끌어 가는 작가나 PD, 감독이 미리 깔아놓은 예상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어쩌다 특별한 케이스를 보이는 관객도 분명히 있겠습니다만, 어차피 드라마나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는 것은 '대다수의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상생활이나 특성, 반응을 기본 모델로 하여 그보다 다소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슈를 만들고 화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만들어진 필름 속 세상이라고 해서 일반인의 모습과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개인의 경험이 주변으로 전달되고, 또 그러한 사실 자체가 트렌드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느낌으로 알 수 있고, 생활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묘한 것이 있습니다. 앞에서 먼저 언급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묘한 마력(매력일 수도 있겠네요.)을 시간이 지날수록 알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혼란스러워짐을 느끼게 된다는 거지요.

물론 상황에 따라 틀리겠습니다만 "사랑해요." 라는 말 속에 숨겨있는 의미 역시 한 두가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나마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해요."라는 말이 뜻하는 바를 이희숙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해요 라는 말 속에는 땅 속으로 스며든 빗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 그대의 깊이를 기쁘게 인정한다는 뜻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볼 수 없는 모습까지도
경계 없이 좋아한다는 뜻이며

그대 한숨과 절망마저도 껴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며

슬플 때나 기쁠 때
구분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대 숨쉬는 길목마다
눈부신 그리움 되고 기다림이 되어주겠다는 뜻이며

내 사랑으로 그대 삶에 힘찬 성장의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며

그대가 내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슴에 피는 꽃으로 남아있듯
나도 그대에게 있어
지워지지 않는 의미로 남고 싶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그야 말로 남녀를 구분하기에 앞서 모두가 꿈꾸고 소망하는 사랑은 이런 느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해요."라는 말에는 배신을 통보하는 언어가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이해를 당부하는 절실함이 배어있을 수도 있고, 용서를 갈구하는 눈물이 묻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전부였던 연인의 입술을 통해 듣게 된 "사랑해요."라는 말을 함께 보낸 기나긴 밤의 끝자락에서가 아니라 며칠 보지 못해 수척해진 얼굴을 감싸들고 걱정하는 순간이라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일 겁니다.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은 커녕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 떨리는 음성으로 "사랑해요."라는 말만 되뇌이고 있다면 어떤 불안감이 뇌리를 스쳐가게 될 겁니다. 정녕 사랑하는 연인이 힘들에 달짝거린 자그마한 입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쉽게 물어볼 수는 없습니다.


대체 그 "사랑해요."라는 말 속에는 어떤 메시지가 숨어 있을까요?


- 당신은 너무 착해요.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세요.
  (사랑에는 모험이 필요한데 당신은 너무 범생이라 숨이 막혀요.)

- 지금까지 나쁘지 않았으니 이렇게 좋은 감정일 때 끝내요.
  (헤어지는 마당에 나쁜 감정 갖게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 좋다고 지금껏 사랑을 나눴는데 마지막 듣기 좋은 립서비스라도 해야지.
 
(지난 달에 선물받은 목걸이 다시 달라고 하기 없기에요.)

-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도 당신은 나를 잊지 마세요.
  (다시 내가 연락할 때 넌 무조건 튀어나와야 돼.)


결국은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헤어지고 싶은 마음과 함께 고도화된 이별전략까지 숨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쿨하게 헤어지는 것도 나중을 위해서는 아주 바람직한 처신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러나 어찌되었건 이별을 주는 입장에서나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입장에서나 모두가 힘든 것 만큼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 만큼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습니다. 바로 사랑이라 존재는 계산을 먼저 앞세우게 되면 생각까지 흐려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탓인지 내 마음이 맑지 않으면 내가 가진 진심이 절대로 상대에게까지 전달될 수가 없다는 것을 경험이 있는 우리들은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사랑을 하게 되면 산수를 열심히 하게 되나 봅니다. 일상생활을 해 오면서 그렇게 구석에 쳐박아 놓고 단 한번도 들쳐보지 않았던 산수를 사랑을 하면서부터는 왜 '나는 열을 줬는데 왜 여덟 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걸까?' 라며 따지게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따지고 드는 그 그 순간, 피어 오르던 사랑의 싹은 조금씩 말라가게 되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내가 가진 것 다 주고도 또 줄 것이 없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남김 없이 다 주더라도 행복으로 가득찬 가슴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부디 2010년에는 온 세상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해요."라는 말로 가득한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