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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하려는 중에 갑자기 휴대폰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누굴까?' 궁금해 하면서 액정을 들여다보니 아이들 이름이 뜨는 것으로 보아 아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왠일인가 싶어 메시지를 확인해 보는데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청주로 이사를 온 이후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외벌이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임을 느낀 아내도 직장에 나가게 되었으니 벌써 2년 하고도 6개월이 되어가고 있네요. 그 동안 아내의 희생 덕분에 집안 살림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제가 체감하고 있느니 항상 아내에게는 고마운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요.

그런 아내는 집에서 일체 직장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혹시라도 자기도 모르게 힘들다는 말을 하게 됨으로써 남편에게 부담을 주게 되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래서인지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은 오늘은 무엇보다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문자메시지 내용으로 봐서는 직장에서 누군가와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문자메시지와 같이 도를 닦아야 해결될 수 있을 만큼 적잖이 화가 났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라도 하소연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거기에 그 누군가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꼴랑 남편 밖에 없었을 것이고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만 하면서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2차 메시지까지 날아 오네요.

"아내문자를맛있게
드시나요나쁜신랑"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습니다.
일단은 포털사이트에 접속해서 무료 SMS창을 열고는 간단하게 메시지부터 보냅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너무나 궁색한 변명인 것 같더군요. 아무래도 직접 통화를 하는 것이 좋겠다 싶은 생각에 먼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해봅니다.

연결음이 몇 번 들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고무공처럼 튀어 나옵니다.

"응. 난데 무슨 일 있어?"
"네? 아니예요. 그냥......"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 왜. 전화로 말하기는 곤란한 거야?"
"그게 아니고요. 저도 관심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요."
"그게 무슨 말이야?"
"어제 졸려죽겠는데 예린아빠가 자꾸만 말을 걸어서 늦게 잤잖아요."

아! 어제 비도 오고 해서 술을 한잔 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에 책을 읽다가 잠을 자려는 아내에게 이것 저것 말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침에 아내가 지난 밤에는 왜 그렇게 잠도 못자게 자꾸 말을 걸었냐고 해서 "그냥! 관심 좀 받고 싶어서 그랬다."라는 말을 참으로 뻔뻔스럽고 당당하게 했었고, 아마도 그런 남편의 행동에 아내는 정식으로 보복을 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순간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안도의 한숨이 나오더군요.

제가 내쉰 한숨소리를 들었는지 아내가 되려 제게 물어 옵니다.

"웬 한숨을 그렇게 땅이 꺼지도록 내는 거예요?"
"응? 그냥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다 싶어서."
"......"

잠시 미적거리고 있는 아내에게 수고하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지만.....

아! 통화를 끝내고 나니 아내의 오늘 행동은 평상시에 주고 받는 농담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온전히 관심을 받기 위한 장난스러운 행동만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혹시 문자메시지로 속상한 얘기 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가 막상 남편과 전화통화까지 하게 되니 대충 얼버무리면서 숨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궁. 정말이지 약에 쓰려해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눈치가 없는 남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따뜻하게 다독거려줄 멘트와 뭔가 기운을 내게 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뭘 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아마 지금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는 골머리가 아플 것 같네요. 영악한 여우하고는 살아도 미련한 곰하고는 못 산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마따나 오늘은 정말 제가 눈치코치 없는 미련 곰탱이가 된 기분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