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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두 번씩 된통 겪어야 하는 것을 보면 제게 만큼은 완치도 없고, 백신도 없는 열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차피 겪어야 할 홍역과도 같은 것을 그래도 올해는 꽤나 일찍이 치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년 몸과 마음이 힘든 시간이면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범벅으로 찾아오는 몸살인데 말입니다.

인간은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근접하려 애쓰거나 성취하려 노력하는 존재일 겁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껏 제가 살아왔던 경험에 비쳐보자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기에 공감을 해줄 거라는 기대도 갖게 되는군요. 그 목표에 대한 기대치가 크면 클수록 스스로가 앓게 되는 몸살의 기운도 컸기 때문에 오늘 흘리는 이 식은 땀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오늘은  김수희가 1990년에 발표한 <서울여자>라는 앨범에 있었던 "애모"라는 노래를 듣게 되는군요. 아마 이 노래가 발표되었던 당시에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후렴구에 있는 '그대 앞에서면 나는 왜 작아 지는가. 그대 등뒤에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가'라는 가사와 함께 김수희가 갖고 있는 특유의 흐느끼는 듯한 음색은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잔잔한 감동을 전해 주네요.

가끔 추억을 생각하고, 또 그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허나 작년 말부터는 왜 그런지 자꾸만 옛날 생각에 젖어드는 날이 많아지네요.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20년 전, 그 노래가 대중들에게 들려졌을 때만 하더라도 스스로를 한없이 작게 만든 사람은 제게 실연의 아픔을 던져주었던 그녀였을 겁니다. 그래서 더욱 그 노래에 집착했겠지요.

허나 지금에 와서 그 노래를 어쩌다 듣게 되는 경우에는 아내가 떠오릅니다. 어이 없게도 아내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진 여자가 너무도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남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저란 존재를 깎아 내리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 같은 생각을 아내는 갖고 있지 않겠습니다만.


열정과 꿈을 가지고 결혼을 했지요. 그리고 내집 마련의 꿈에서부터 부부생활은 시작되었고요. 살다 보니 꿈은 꿈이고, 목표는 목표더라는 느낌이 강해지더랍니다. 조금씩 포기하고 조금씩 낮게 보는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실과도 타협을 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은 커녕 제자리 걸음에만도 감사해야 하는 처지를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채워가야 할 시간을 흘려 보내다 보니 이 나이에 가진 것이라고는 변변찮은 사회적 지위와 돈벌이 지옥으로 몰아넣은 아내, 그리고 아직 꿈과 현실의 거리감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두 딸아이 밖에는 없네요. 그러다 보니 그렇게 어리고 작아 보였던 아내의 등짝이 어느 날부터는 넓어보이고, 어리게만 보였던 아이들 역시 기다란 그림자를 가진 존재감으로 무겁게 다가 오더랍니다.

사골 국물을 떠먹던 숟가락에 뭉텅이살 하나가 들려지기에 얼른 반주 한잔을 따라 마시려는 찰나 인터넷에 맞춰놓은 7080 테마곡에서 이 노래, "애모"가 흘러 나오네요. 안방에서 책을 읽고 있을 아내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겹쳐지는 순간입니다.

2010년에는 더 이상 작아지는 느낌을 가져서는 안되겠지요. 어떻게 해서든 작년보다는 훨씬 나은 한해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시 이 노래를 듣게 되는 그 날에는 지금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져있는 모습을 가져야만 하겠지요. 머그잔에 담겨진 쓰디 쓴 반주 한잔을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약으로 생각하며 남김없이 들이키는 오늘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