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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가 4번 줄을 퉁겼다. 프렛을 누른 손가락이 가파르게 움직였다. 날카롭던 전자음이 늘어져 버징을 울리다 잦아들었다. 전자기타 등 전자악기를 제작하는 (주)한국뮤즈(대표 김광원)는 격렬한 사운드에 휘감겨 있다. 장엄한 콘서트를 앞둔 플레이어가 리허설하듯 끊어지는 음들이 공장을 종일 감싼다. OEM으로 세계 수출시장에 진입, 자체 디자인 개발에 힘입어 ODM으로 전환한 한국뮤즈는 내년 한국 뮤지션들에게 자사브랜드를 단 명품기타를 선보일 예정이다.

(주)한국뮤즈(주)한국뮤즈


거장 기타리스트들의 공연은 감동적이다. 이어지다 끊어지고 내리다 오르는가 하면 심연을 깊게 찌르며 가슴을 울린다. 전자기타의 음역은 넓다. 봄 이불 낙면보다 가볍게 상승하며 단도처럼 날카롭게 찢다가 순식간 물먹은 솜이불처럼 가라앉아 무겁고 진중한 떨림을 남긴다. 황홀한 음색은 듣는 이들의 가슴에 흔적을 남긴다. 관객들은 조명에 비친 기타리스트의 손끝을 본다. 그러나 그와 경쟁하는 또 다른 기타리스트는 연주자가 맨 기타와 그의 앰프 브랜드를 본다.

음이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가 연주하는가에 따라 소리는 제각각이다. 그래서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예민하다. 그래서 예술을 다루는 도구인 악기는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야 한다. 플레이어가 순간적으로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끝이다. 자신의 예술성을 발현하지 못하는 악기는 의미 없는 전자제품에 불과하다. 예술에 전업하는 소비자들의 타협하지 않는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악기는 오래전부터 하이앤드, 명품만 살아남았다.

1987년 창업한 한국뮤즈의 인천 송도 공장 규모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전자악기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기업이다. 유명 브랜드 전자악기 수출의 최전선에 서왔기 때문이다.

유명브랜드 OEM으로 기반확보, ODM으로 전환

(주)한국뮤즈(주)한국뮤즈

한국뮤즈는 처음부터 전자악기를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전자악기에 수반되는 앰프, 믹서, 키보드 등 전자제품을 주로 제작했다. 안정적인 제작기술을 보이자 미국 악기제조사의 수주를 받아 OEM 생산기지가 되면서 전자악기를 직접 만들었다. 창업과 동시에 호황을 맞아 1987년 일본을 중심으로 500만 달러 수출을 이뤘다. 대일무역 역조시기였던 걸 감안하면 일본 수출에서 의외로 선전한 것이다. 이때부터 한국뮤즈는 악기산업의 수출전망을 밝혔다.

미국이나 일본의 유명 브랜드 OEM 생산으로 한국뮤즈는 단기간에 수출 기반을 잡았다. 주로 미국의 컨설턴트가 유명 디자인을 지원해 수출은 비교적 쉬웠다. 안정적인 수출로가 확보된 1989년 한국뮤즈는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했다. 미국의 협업업체가 손을 놔버릴 수도 있고 평생 OEM만으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OEM을 통해 제작기술을 쌓아 자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ODM으로 전환하게 됐다.

완성품 납품 초창기인 1987년에서 1990년까지 한국뮤즈는 클레임을 수없이 당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악기 생산을 일반 전자제품처럼 생각했다가 곤혹을 치른 것이다. 바이어들은 자신들의 디자인대로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부품 규격이 안 맞고 전체적으로 얼라이먼트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더해 ‘언제나 피니시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도장, 도금이 선진국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품질이 균질하지 못하고 마무리가 완벽하지 않다, 포장상태가 명품에 맞춰 고급스럽지 않다는 클레임도 들어왔다. 한국뮤즈는 클레임에 책임을 져가면서 명품을 만드는 방법을 하나씩 배웠다. 수출하면서 선진 기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제 악기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한국뮤즈는 완제품 조립을 중국 공장에 맡긴다. 하지만 꼼꼼하지 않으면 수출이 불가능하다는 금언에 따라 본사 기술자 9명을 중국에 파견했다. 현지에서 디자인을 교정하고 트러블을 지속적으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광원 대표는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생산기술이란 없다. 모두 경험에서 나온다. 그래서 기업의 역사, 임직원이 겪은 경험의 역사는 무척 중요하다. 바느질 하나만 해도 그런데 하물며 악기는 더욱 더하다. 아날로그 산업에서 명품을 만들어 수출하려면 역사가 더욱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수출물량이 확보된 기업들이 그러하듯 한국뮤즈도 초창기부터 자가 브랜드를 시도했다. 연구개발을 통해 신상품을 냈지만 출시 한 해 동안 선진국에서 전혀 판매되지 않았다. 만들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앞서 자가 브랜드에 욕심을 낸 것이었다. 시장 조사, 브랜드 마케팅, 시장 적합도 조사가 안 된 상태였다. 김 대표 역시 이때 자가 브랜드에 좌절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OEM에 매여 있을 수는 없었다. 좌절의 경험을 발판삼아 1993년 한국뮤즈는 자가 브랜드를 다시 출시했다. 예산을 들여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전략도 계속 점검했다.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왼손에는 OEM, 오른손에는 자가 브랜드를 잡은 것이다. 고가 고급제품은 ALDEN, 중저가는 MINISTAR라는 브랜드를 달았다. 시장의 상위부터 중하위 브랜드까지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불황 없는 산업 그러나 명품만 살아남아

악기산업에는 불황이 없다. 경기를 타지 않는 마니아 수요가 언제나 있다. 악기 중에서도 어쿠스틱 악기는 대개 일반인들이 사서 쓰고 고장 나면 버린다. 그러나 전자악기는 상대적으로 음감에 민감한 전문가나 마니아층이 주로 소비한다. 이 때문에 지난 금융위기에도 전자악기 산업에는 별다른 수요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수요가 정해진 만큼 마니아들은 한 대를 사도 최고급을 지향하게 돼 있다.

한국뮤즈는 지난 23년 동안 품질개발, 디자인개발에 집중적으로 힘을 쏟았다. 해외 유수 디자이너들의 도움을 받았고, 외국 석학들의 컨설턴트 사업에 참여해 디자인 개발을 밀어왔다. 지속적인 개발로 한국뮤즈의 제품들은 디자인, 품질, 가격 면에서 상위그룹에 진입할 만한 경쟁력을 갖췄다.

김 대표는 “전자악기 마니아들은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이다. 시장이 어렵더라도 사야 하는 건 꼭 사야 하는 사람들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층에서 ‘살 수밖에 없는 상품’을 만들면 된다. 그러나 전자악기 사업은 하기가 힘들다. 디자인, 외관 등에서 몹시 까다롭고 서구 고객들이 살 수 있는 첨단 설계 디자인 능력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자악기는 외관만 멋지다고 멋진 제품이 되지 않는다. 외관에 맞춰 사운드가 매칭돼야 한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제작 기법이 혁신적인 디자인과 맞아떨어질 때 마니아들의 귀와 눈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한국뮤즈 본사에는 언제나 전자기타 소리가 울린다. 사운드를 방음벽 속에 가두지 않는다. 직원들이 거의 다 들을 수 있게 공개된 장소에서 새로운 악기를 시험 연주한다. 김 대표 사무실에서도 전자음이 언제나 들린다. 직원들이 사운드를 듣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디자이너에게 달려가 품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음이 처진다, 늘어진다, 고음에서 떨린다, 저음에서 번진다는 등 사원들 각자 들은 느낌이 사운드를 조각하는 칼이 된다.

(주)한국뮤즈(주)한국뮤즈


완성품 전자악기에는 전 산업 기술이 망라돼 있다. 규모는 작지만 유관산업 분야가 매우 폭넓은 편에 속한다. 최종 제조만 잘한다고 명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협력할 수 있는 기업들의 기술이 동반 성장해야 한다. 도료, 목재, 하드웨어, 전자부품, 사운드 엔지니어링 등의 기술이 최고급이어야 좋은 제품이 만들어진다. 악기산업은 명품화, 제일주의를 지향하고 시장규모가 좁기 때문에 기업간 기술이전이 인색한 편이다. 한국뮤즈 역시 제조공장을 중국에 두었지만 디자인과 기술개발은 철저히 한국에서만 진행한다.

전자악기는 고가인데다 민감한 제품이다. 이 때문에 원재료 보관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목재나 전자부품, 하드웨어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잘 만들어진 창고에 원자재를 특별하게 모셔야 한다. 악기를 구성하는 부품 역시 명품이어야 한다. 부품을 만들어낼 금형이 정밀해야 하고, 여러 금형 중 하나라도 이가 맞지 않으면 좋은 악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조 공정도 긴 편이다. 미세공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1유니트당 약 500공정이 든다. 이 때문에 완성품을 만드는 기간과 라인이 길다.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의 습도와 온도도 자동으로 통제해야 한다. 습도가 다르게 악기를 제작하면 소리가 달라진다. 포장도 특별하다. 항온, 항습은 기본이고,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선적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컨테이너 환경이 악기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그렇다.

생산자동화에도 한계가 있다. 선공정 정도만 자동화가 가능하고 실질적인 제작은 모두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5년 전 중국의 노동환경이 변해 한국뮤즈 역시 중국을 통한 수출에 충격을 받자 공장 자동화를 서둘렀다. 그러나 350명이던 중국노동자 수를 200명으로 줄이는 게 한계였다. 손이 많이 가는 공정과 기계로 제작이 불가능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었다.

장인정신을 가진 마니아들

세계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한국뮤즈는 장인정신을 강조한다. 한 대를 만들어도 특별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디자인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 한국뮤즈는 명품악기를 알고 다룰 줄 아는 전자악기 마니아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그리고 이들의 문화를 고려해 출퇴근 시간을 정해놓지 않았다. 작업복도 억지로 입히지 않았다. 조직문화를 자유롭게 만들지 않으면 자유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명품을 분석할 수 있는 마니아들이 많다보니 직원 중에 전문연주자도 많다. 한국뮤즈는 직원들이 회사 밖에서 개인적으로 여는 연주회를 보장해준다. 물론 이런 전문가들을 채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극소수들이고 전문연주자들은 직장인이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자사 브랜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선진국 시장의 명품 반열에 올려놓는 게 회사의 사운이고 비전이다”라고 말했다. 유명 기타브랜드 깁슨처럼 전 세계 마니아가 손꼽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자악기가 세계적인 브랜드 반열에 오르면 제품 가격은 수요공급의 원칙을 벗어난다. 명품이 시장가격을 역으로 형성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가격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면 그 제품은 일단 명품 반열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게 된다.

(주)한국뮤즈(주)한국뮤즈

한국뮤즈는 통상적인 OEM과 달리 자사 디자인을 제품에 적용한다. 자연스럽게 자사 디자인을 수출하는 것이다. 현재 OEM으로 생산된 제품도 상대 회사의 브랜드만 붙인다. 디자인을 한국에서 하면서 독점적인 생산이 가능해졌는데 세계시장에서도 한국뮤즈의 제품 수준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전 세계 악기산업 규모는 대략 10억 달러 정도다. 한국의 문화산업이 발달하면서 세계 악기산업 중 우리 내수시장 비중도 점점 커졌다. 한국뮤즈의 제품은 선진국 지향적 상품으로 주로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수출에서 집중적인 성과를 내왔다. 김 대표는 이를 기반으로 과거 20년간 잠자던 국내 수요를 깨우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한국뮤즈는 내년 초 국내 영업팀을 운영할 채비를 갖췄다. 이를 위해 지난해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했다.

한국뮤즈는 올해 매출액을 70억 원 내외로 본다. 이 중 90%는 수출로 벌어들였다. 내년부터 내수시장 비율을 늘여 80 대 20 수준으로 맞출 계획이다. 세계시장 대비 국내시장은 1.5~3%의 마켓 셰어로 20억 원 정도 규모다. 한국뮤즈는 국내외 시장점유율을 높여 내년 10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김 대표는 재즈애호가다. 젊은 시절 음악을 좋아해 재즈기타를 연주했다. 김 대표는 “세계적인 전자기타 컨벤션에 가면 에릭 클랩튼이 연주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걸 보면서 악기를 만드는 것은 인생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유명 록 스타의 신들린 연주를 지켜보다 얼핏 한국뮤즈의 브랜드가 비친다면 그때 김 대표의 악기가 명품 반열에 다가갔음을 새삼 느끼게 될 듯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업나라]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