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발을 먹던 아내, 계란찜도 만들어 주세요.
그저께 갑자기 보내온 아내의 문자에서부터 닭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닭발도 산낙지도 먹지 못하게 된 아내에게 다음 날 꼭 시장에 들러서 사오마 약속을 하면서 일단락 되었지요. 이런... 그 터미널 시장의 닭발가게도 두 곳이나 있었는데 모두 안보이더랍니다. 입은 뒀다 뭐하나 싶어 생닭과 날닭발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점포에 있는 아주머니 한 분께 물어보았습니다.
▶ 관련 포스트 : 닭발 먹고싶다는 아내, 순대국 사오라는 남편
그리고 어제는 집에 들어가기 전, 시장에 들렀습니다.
"헉! 이럴수가?"
생닭과 튀김닭, 닭발을 팔던 점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시장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얼마 전에 폐업을 했다는군요. 순간 몇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잘 됐다 생각하고 그냥 집으로 들어갈까?', '아니야. 어제도 실망했었는데 오늘까지 언짢은 마음을 갖게 해선 안되겠지?', '그럼 어떻게 하지?'
아! 한가지 생각이 번개같이 스쳤습니다. 그래요. 청주고속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시장에서 지나가면서 보았던 기억이 났던 겁니다. 빛의 속도를 빙자하여 아주 재빠르게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저 위에서는 아직 팔텐데요?" 아주머니께서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지금껏 걸어 내려왔던 길인지라 다소 실망감이 들었죠. 어쩌나 하면서 돌아서려는데 아주머니께서 한 말씀 더해주시네요. 아주머니께서 일러주신 반찬가게에 갔더니 멋진 풍채를 자랑하는 닭발구이팩이 몇개 보였지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냉큼 팩 하나를 집어들고 계산을 치르고는 집을 향해 쏜살같이 움직였습니다. 아내의 퇴근시간과 얼추 맞아 떨어졌기에 중간에 합류하여 함께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접시에 예쁘게 담아 아내에게 고이 바치니(?) 아내의 입이 귀에까지 걸립니다. 실상 반찬가게에서 가지고 온 닭발은 삶은 닭발에 양념만 입혀서 닭발과 양념이 겉돌았기 때문에 영 별로였던 거였지요. 그걸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졸이는 과정을 거쳤으니 닭발과 양념이 혼연일치(?)가 되어 비로소 예전의 구이 맛을 낼 수 있었던 겁니다.
"저기 반찬가게에서는 팔 거예요."
"자. 하나 잡고 뜯어 봐봐봐."
"야... 이거 정말 맛있겠어요."
한입 맛있게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자잘한 뼛조각을 발라내던 아내가 예전 맛이 안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지요. 예전 맛을 나게끔 재가공하면 되는 거랍니다. 다행이 사골을 끓여놓은 찜솥 뚜껑을 열어보니 식은 사골원액이 메밀묵처럼 탱탱하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국자로 얼른 절반 만큼만 떠내어 궁중팬에 옮겨 담고는 가스렌지 불을 최대한으로 올려놓고 닭발을 심하게 귀찮게 했습니다. 누르고 흔들고 휘젓고...
아내와 함께 맛있게 몇 개째를 뜯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매운 거 먹을 때는 뭐가 좋은 거냐고 물어왔습니다. 당연히 계란탕이나 계란찜이 대빵이라는 말을 해줬더니 그 말을 듣던 아내의 눈에서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의 광채가 순간적으로 어른거렸습니다. 맞습니다. 몰라서 물어본 말이 아니었던 거죠.
뚝배기를 꺼내 계란 두개를 깨서 물과 적당히 혼합하여 즉흥적으로 계란찜을 만들었고, 또다시 고이 갖다 바쳤습니다. 너무나 행복하게 먹어보란 말 한마디 없이 쓱싹쓱싹 바닥까지 긁어 먹더니 "한개 더! 맛있게 추가요!"를 외치더랍니다. 술도 한잔 나눠 마셨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한 솥 더 해다 바쳤지요.
술도 닭발도 계란찜도 다 먹고 난 뒤에 아내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와 함께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너무 이뻐 죽겠어요. 맨날 오늘처럼만 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