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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보통 위기를 맞아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는데, 일부 기업은 그 결과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반전은 철학사에 있어 흔한 일이다. 노장사상 역시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정립되었다.

최근 들어 노장사상의 핵심인 비움에 관한 철학이 무엇인가가 채우기 위해 골몰하는 기업들의 생각을 뒤집는 발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비움의 철학은 디자인관이나 기업의 성공담과 결부되어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No. 1   세계에도 통한 ‘비움의 아름다움’


2,500여 년 전, 노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것을 거부하고, 자연 원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줬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은 그 속이 비어있음(無)으로 해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릇은 그 비어있음(無)으로 해서 방(房)으로써의 쓰임이 생긴다. 따라서 유(有)가 이로운 것은 무(無)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움의 철학은 무위자연에 눈을 뜬 노자의 혜안을 보여준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동양 현자의 철학은 우리 문화와 만나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꼽히는 ‘여백의 미’에서 절정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1994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경매장에서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 낙찰가인 99억 원에 팔린 ‘철화용문항아리’가 대표적 사례인 것처럼 실제로 도자기의 면을 그림으로 꽉 채운 중국의 백자에 비해 ‘여백’이 중시된 조선의 백자는 미학적인 가치에서 세계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편 생존해 있는 가장 한국적인 건축가이자 세계적 건축가로 손꼽히는 건축가 승효상은 ‘건축이란 비움의 삶을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설계한 건축물은 과시보다는 쓰임새를, 더함보다는 나눔을, 채움보다는 비움을 더 중시한다.

2009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디자이너이자, 비움(VIUM)이라는 디자인 회사의 CEO인 은병수 씨는 디자인에 대해 ‘생각해서 만드는 것, 그로부터 생각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패션이나 디자인 등 한국적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통하던 것이 ‘비움의 철학’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성공한 기업의 경영철학과 만나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No. 2   아이폰과 이베이의 오픈 철학


창업 칼럼니스트인 정보철은 ‘승자의 원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아이폰과 이베이의 성공 뒤에는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것이 있고, 비우는 순간 채워진다’는 역설적인 진리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아이폰 신드롬의 중요한 요인에는 앱스토어(App Store)가 있다. 앱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스토어의 줄임말로 스마트폰용 콘텐츠를 사용자가 편리하게 선택하도록 만든 개방형 모바일 장터이다. 그런데 앱스토어의 원리를 따져보면 신기하게도 노자의 비움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평소 스티브 잡스(애플사 CEO)는 “애플은 제품이 아니라 꿈을 판다”고 역설하고 있는데, 이는 제품의 사용자가 단순히 기업이 제공하는 기능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라는 관점을 넘어선다. 앱스토어라는 무형의 빈 공간이 콘텐츠를 팔고 싶은 사람과 사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해줌으로써, 궁극적으로 기업이 ‘제품’만을 생산하는 틀에서 벗어나 꿈을 팔고 문화를 창조는 시대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의 성공 비결도 따져볼 수 있다. 이베이는 1995년 설립 당시 직원 30명으로 구성된 벤처회사에서 시작해 현재는 전 세계 2억 4,8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 인터넷 경매 업체로 매년 50억 달러 이상의 물품이 거래되는 세계 최대의 이마켓 플레이스이다.

막강한 거래량을 자랑하는 이베이의 경영철학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떠한 물건이라도 거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To help practically anyone trade practically anything on earth)’이다.

실제로 이베이는 회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 사용자 공동체의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People are basically good)’는 믿음을 전제하고 구매자 및 판매자를 포함한 모든 고객을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는 경영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베이는 어떤 것도 팔거나 만들지는 않지만 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시장과 회원 간에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인 방(房)을 제공함으로써, 희귀 품목에서부터 일반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수천 개의 카테고리에서 수많은 물품이 오고갈 수 있는 용(用)의 콘텐츠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No. 3   디시인사이드 성장 비결도 ‘비움’


한편 하루 방문자만 60만 명, 하루 페이지뷰가 3,000만 건을 넘어서고 있는 디시인사이드는 한국적인 이베이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다. 웬만한 대형 포털 수준을 넘어선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사실 디시인사이드는 10년 전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 컴퓨터 이용 후기 사이트’라는 작은 사이트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설립 10년 만에 직원 48명, 자본금 30억 원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실제로 이 회사 관계자는 “중소 포털 사이트로 10년을 견딘 건 한국에서 디시인사이드가 유일하다”라고 말한다.

설립 당시에는 지금처럼 직접적인 상품 거래가 이뤄지는 사이트는 아니었지만 하루에도 수만 건씩 재미난 사진과 게시물이 올라오면서 ‘디시 폐인’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재기발랄한 사용자 중심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 덕에 이들 중에 ‘메가쇼킹’이나 ‘김풍’과 같은 유명 만화가도 탄생됐다. 그리고 이러한 사용자 중심의 사이트 운영 방침은 결론적으로 디시인사이드의 장수의 비결이 됐다.

디시인사이드 역시 이베이의 경우처럼 운영진이 사용자들을 위한 소통 공간을 열어둘 뿐,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음으로써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디시인사이드 운영진은 도배 댓글을 삭제하거나 사용자의 동향 파악에 집중할 뿐 사이트 운영에는 웬만하면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터넷 악플과 루저(패배자) 문화의 진원지라는 비판도 따르지만, 10년 전 ‘Digital Camera’의 약자로 출발한 디시인사이드는 이제 그 의미를 ‘Digital Community’로 바꾸며, 여전히 사용자 중심의 열린 공간으로써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No. 4   앱스토어 방식으로 부가가치 속속 창출


한편 애플 아이폰 사용자가 25만 명을 돌파하고, 실제로 한국인 개발자들의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이 잇따라 등록되면서 이른바 ‘앱이코노미(The App Economy)’의 태동 조짐이 일고 있다.

앱이코노미는 소비자가 바로 생산자가 되는(프로슈머)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써 수조 원에 이르는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앱스토어에 올라온 콘텐츠 중 한국인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5개가 100대 유료 애플리케이션에 꼽힌 것은 좋은 본보기이다. 콜레세움(7위), 카툰워즈(20위), 아이건(37위), 앱박스프로(96위) 등이다. 게다가 이들 개발자들이 기존 대기업이 아닌 1인 기업(1~3인) 또는 10인 이하 소기업으로 최대 매출 10억 원 미만인 기업들이어서 더욱 고무적이다.

이를 두고 업계 전문가들은 앱이코노미는 대기업, 중소기업과 하드웨어 중심인 IT 산업 구도를 벤처, 1인 기업,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것이 IT 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례라고도 말한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는 “엡스토어 시장은 기업보다는 개인이 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앱스토어의 인기에 힘입은 1인 기업이 산업 구조 변화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기존의 통신사들도 각각 모바일 장터를 만들고 등록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또한 은행, 인터넷기업, 지방자치단체 등도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를 구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몸값이 오르는 것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No. 5  중소기업은 앤펀, 지식나눔터 통해 교류 중


산업기술인터넷방송국이 운영하는 산업기술커뮤니티 포털 엔펀(www.enfun.net )은 신제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제조 기반의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신제품 개발 지원 프로그램인 ‘브랜드 스토리’를 시행하고 있다.

‘브랜드 스토리’는 제품의 성공 잠재력은 다분하지만, 마케팅 비용과 전문 개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의 현실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된 온라인형 마케팅 프로그램으로서 개발자가 놓치기 쉬운 실사용자들의 구체적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인터넷 공간을 열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시범적으로 ‘브랜드 스토리 공동 기획단’을 구성해, 휴대용 음향기기 ‘사파(SAFA)’를 제조하는 한 중소업체의 신제품 MP3플레이어(프로젝트명 : 플라잉)를 공동으로 개발하는 과제를 추진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난해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지식나눔터(www.digital.com)를 통해 1만 명의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도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사실상 중소기업은 시제품을 출시하고도 얼마나 팔릴 것인지 예측이 어렵고, 전문 리서치회사의 시장 반응 조사를 활용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돼 금전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실시된 중소기업 지식나눔터는 중소기업들이 스스로 온라인상에 자신의 제품을 올리고, 이를 통해 시제품의 생산 단계부터 시장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 두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서도 홍보력이 미약해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적극적인 기회의 장으로 확대되었다.

과거 소비자들은 이미 완성된 기성품을 수동적으로 구매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도록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개발 단계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기업은 제품 생산에 소비자들을 적극 참여시켜 이를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건강생활가전 전문기업 한경희생활과학의 나종호 부사장은 이러한 경향에 대해, 최근 27년간의 마케팅 경험으로 얻은 고객 중심의 마케팅에 관한 철학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업이 진정 고객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고객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게 돼 고객의 불편을 해결해줄 수 있는 히트상품을 만들 수 있다.”


P.S   난세에 꽃핀 노장사상은?


노자와 장자는 공자와 시기적으로 선후를 이루며 함께 도가를 대표한다. 양자의 연속성은 노자의 무위자연 개념을 장자가 수용한 데서 잘 나타나며, 사마천은 사기에서 ‘장자의 학문은 노자의 말에 귀착한다’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장자는 춘추시대 마이너 중 마이너 국가인 송나라 사람이다. 나라의 삶도 백성의 삶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장자는 초연한 생활을 즐기며 10여 만자에 이르는 심오한 문장을 남겼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현실 세계를 보는 엄연히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천지만물의 근원으로 돌아가 사유하려는 입장이 주된 반면, 장자에서는 현실의 속박에서 벗어난 절대자유가 중심축을 이룬다. 시대적 위기가 장자로 하여금 새로운 삶의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 셈이다.

장자는 ‘감정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감정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이나 감정은 모두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종종 이를 잊는다. 마찬가지로 난세를 만난 기업이 온갖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자기혁신에서 먼저 찾지 않는다면 백 가지 진단이 무의미하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기업나라]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