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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불탄이 그녀를 처음 보게 된 것이 정치인들에게 개인 홈페이지를 만드는 붐을 조성하였던 웹에이전시 회사에서였으니 벌써 횟수로 10년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IT의 최고봉에 서겠다면서 '벤처신화 만들기(시민벤처이론과 경영 커리큘럼)'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대한민국의 가장 큰 통신사업자와 함께 미래를 도모했던 그 시절.....

아!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세월이 참 빠르기는 한가 봅니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KTF와의 업무제휴를 시작으로 KBS와 MBC에서는 뉴스를 통해 불탄이 지휘했던 통역서비스를 앞다퉈 보도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었고, 또 불탄이 가진 주식을 양도해달라는 유횩도 꽤나 많이 받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뭐, 나중에 가서는 비록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지만 그때는 어떤 자신감으로 충만했던지 양도를 유혹하던 그 많은 주주들한테 넘기지 못했었지요. 그건 지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식공모서부터 시작해서 코스닥까지의 모든 작업을 지휘했던지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탄만큼 갖고 있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요. 어찌되었건 불탄이 의도했던대로 코스닥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면 불탄은 지금쯤 여행이나 다니면서 이쑤시개나 쑤시고 있었을 테지요.





예전의 일을 떠올리다 보니 하나의 추억이 또 그림처럼 지나가는군요. 아마 그 날은 용인에 소재하고 있는 기업연수원을 통째로 빌려 200여명의 임직원이 함께 '신입사원연수회'라는 이름으로 뒤엉켰던 날이었을 겁니다. 어느 기업에서나 마찬가지로 신입사원들에게는 목적의식과 함께 참된 에너지원으로 성장해 달라는 의미에서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을 요구했던 시간이었을 테지요. 중간 간부 이상으로 하루 빨리 성장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아주 절실했을 테고 말입니다.

반면에 기존 임직원들에게는 좀더 잘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너희들 뺀질거리면 이 후배들한테 물먹을 수도 있어."라는 의미도 은연중에 내비쳤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누구 하나가 실수할 지 모를 나사 풀린 발언에 대비하여 술의 반입만큼은 철저하게 차단했었고 말입니다.




그런 신입사원의 오리엔테이션을 겸비한 자리에 불탄은 마케팅과 전략사업본부를 책임지고 있는 임원이었으니 평소에 웹 디자인 분야에서의 재능이 뛰어났던 후배 하나를 대리급으로 급추천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겁니다. 더욱이 그녀는 초창기 웹 디자이너로서는 꽤나 많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그 분야에서는 이름을 알리고 있던 유능한 인재였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어찌 어찌하여 그녀를 영입하였고, 그녀는 오리엔테이션에도 참석하여 비록 직급은 틀리지만 동기라는 이름을 나누면서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함께 받았습니다.

이후 신입사원들은 각자가 희망했던 부서에, 혹은 순환보직을 약속하며 적합한 자리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그녀는 회사가 요구하는 방향을 파악하여 두개의 사이트를 동시에 만듦으로서 소비자와 관공서에 대한 공략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웹을 책임지는 디자이너면서도 마케팅과의 접목에 노력했던 직원은 그 이후로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그녀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자신이 판단하기에 필요하다면 일부 외주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사이트 오픈일을 포함하여 회사와 그녀가 목적했던 날짜에 있어서 단 하루의 오차를 만들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했던 직원이었던 것 만큼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국 수익보다 지출이 많으면 기업은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늘 불안했던 회사는 어느날 흔적없이 박살이 나게 되었고, 많은 직원들 역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불탄의 눈에는 피눈물이 났겠지요.

젊음과 영혼까지 바쳤던 그 회사가 어느날 공중분해가 되어 버린다면 어떻겠습니까? 더군다나 몇 십억 정도는 우습게 챙기게 될 줄 알았던 삼성증권에 예탁해 놓은 불탄의 우리사주 역시 거품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거겠지요. 그게 9시 뉴스를 통해 회사가 가지고 있는 BM이 소개된 이후부터는 불탄의 주식을 사겠다는 투자자들이 넘쳐났었으니 만약 그때 그냥 팔았더라면 그 당시의 시가로 2~3억원 정도는 거끈히 챙겼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어쨌든 지금 생각해 보니 불탄이 의사결정권자로 있었던 마케팅팀과 전략사업본부는 그저 돈을 물어다 주는 곰돌이였을 뿐이었습니다. 마케팅팀과 전략본부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재주를 부려 돈을 만들어 냈지만 결국 그 돈은 오너가 지정하는 제2, 제3의 유령거래처로 고스란히 휩쓸려 들어가버림으로써 기업은 파산을 향해 달려갔던 겁니다.

오늘따라 말이 많은 걸 보니 불탄이 지금껏 함구하며 살아왔던 그 시절이 무척이나 억울했었나 봅니다. 어쨌든 그 이후로 회사가 쫑이 나고 깨져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를 탄탄하게 끌고가던 그녀에게서 며칠 전 연락이 왔습니다. 참고로 불탄의 휴대폰은 10년이 넘도록 그 번호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

"이사님! 뭐 하고 지내세요? 잘 지내고 계신 거죠?"

뭔가 알콜기가 엿보이는 음성입니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너무 앞서더랍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추석에도, 새해 첫날에도, 그리고 지난 설날에도 복을 갈쿠리로 긁어서 싹쓸이 하라는 덕담을 연신 해줬던 몇 안되는 지인 중에 한명이었네요.

"그래. 나, 힘들지만 그래도 목숨 줄 아직 놓지 않았다. 예전의 명성을 한번 다시 찾아야지. 나 노력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처럼 또 널 부르게 될 거다. 부르면 언제나 처럼 '네'하고 달려와 줄 거지?"
"하하하...... 이사님, 저 이제 그런 것에 미련 없어요. 저 장사하잖아요?"
"으응? 뭔 장사? 웹만 하고 홈페이지만 만들고 에이치티엠엘 코드만 생성하던 니가 뭔 장사를 한다고?"
"포장마차 해요. 아! 이사님, 그렇다고 리어카로 도망다니는 포장마차 아니고요. 버젓이 가게도 있답니다."
"응? 니가 요리도 잘했어?"
"누군 태어나면서부터 요리를 잘하나요? 먹고 살려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 만들게 되더라고요."
"그래? 어디서 하는데......?"
"신설동 전철역 바로 앞이에요."
"역 근처면 역세권이라 해서 가게세도 꽤 나오겠는데? 어떻게...... 먹고는 살어?"
"그럼요. 욕심만 안부리면 지금처럼 사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아~ 그렇습니다. 욕심만 안부리면...... 욕심만 안부린다면......

그놈의 욕심이 사람을 망치게 되더랍니다. 허나 욕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다. 당장 로또를 산 사람이 2등씩이나 당첨되어 몇 천만 원을 받게 되었는데도 만족해 하거나 행복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되려 2등 당첨자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이유로 잠도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라는 것이 "번호 하나만 더 맞췄더라면 몇십 억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탐욕스런 생각 때문이라나요?





그나저나 이런 전화까지 받게 되었으니 한 번쯤은 찾아가서 막걸리 한사발이라도, 혹은 소주 한잔이라도 함께 기울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을 떠나 청주에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전화까지 한 걸 보면 속내를 드러낼 뭔가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또한 불탄 역시 언제까지나 청주라는 촌구석에서 살고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갈 수만은 없을 테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 달이 가기 전에는 한번 자리를 마련해야 되겠어요.
어떠세요? 신설동에서 같이 한 꼬뿌하실 이웃님들 안계신가요? 하하......^^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