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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블로거 자신에게 관련된 이야기가 이슈나 화제가 되었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아무래도 모르는 분야보다는 자신이 실제로 업무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최근에 고민을 하면서 연구했던 것들 만큼은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고, 보이는 정보에 대한 의견소통도 순조로울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처음으로 불혹을 훌쩍 넘겼으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자녀를 가질 수 있는 나이에 큰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너무나도 늦된 소시민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볼까 합니다. 물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불탄이겠지요.

불탄의 큰딸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나 안타까웠던 한 때의 시간을 잘 넘길 수 있엇기에, 그리고 큰딸의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겪어야 했었던 그 위기상황의 고비를 잘 극복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답니다.

잠시 그 상황을 언급하자면 큰딸에게는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굉장히 크고 넓었었나 봅니다. 그러니 엄마의 뱃속을 스스로 먼저 박차고 나왔겠지요. 그러나 너무나 약하게 태어났는지라 엄마의 뱃속에 있어야 했을 그 기간 동안 엄마의 뱃속을 대신하여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했었지요. 그리고 아홉살이 된 올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말입니다.

14개월 터울의 동생은 매번 언니를 괴롭히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아빠의 마음이 그리 편치가 않겠지요. 그런 모습은 어른 걸음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아이들 조부모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런 모습을 자주 보아 온 아내만은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차분하게 교통정리에 열심이고 말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아이들이 사달라고 조르던 플레이콘(?)



그런데 지난 3월 5일에 있었던 초등학교 입학식 이후로 큰애의 모습이 부쩍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랍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빠의 눈에는 인큐베이터에서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필사의 투쟁을 벌였던 그 안타깝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스쳐가고 있는데 큰아이는 벌써 "나홀로 독립"을 주장하고 나선 거지요.

"아빠! 할 말이 있는데요."
"응? 무슨 말?"
"맨날 아빠가 일 하시다가 절 학교에 데려다 주잖아요?"
"응. 그랬었지. 근데 그게 왜?"
"이젠 저 혼자 다닐 수 있다고요. 그리고 예진이도 아침에 제가 학교에 갈 때 유치원에 델따 줄 거예요."
"예진이는 그렇다 치고, 너 정말 그럴 자신 있는 거야?"
"그럼요. 전 벌써 초등학교 언니잖아요."

헉스~
무척이나 센세이션한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아빠, 엄마의 수고로움을 덜해줄 수 있는 무지하게 고마운 말입니다만, 또 어느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말입니다. 선뜻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힘든...... 그래서 잠시 멍하게 있었나 봅니다.


플레이콘으로 우리집 거실과 링던지기를 만들었다고 자랑을 하더랍니다.



세상이 너무나 각박해지고 무섭게 변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약하게 키우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정말로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피해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도 그렇고, 힘에 부쳐 잘 넘어지는 아이의 체력도 걱정됩니다. 그래도 아이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억지로 해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는 마음이 아플지 모르겠지만 먼 미래를 놓고 보자면 더 발전적인 방향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결국 지난 토요일에는 아파트 현관까지만 배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걱정스런 마음을 떨칠 수 없었기에 초등학교 1학년 언니가 유치원생 동생의 손을 꼭 잡고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뒷 모습을 눈에 담아가며 200M 정도 되는 학교 교문까지 몰래 뒤따라 갔습니다. 그래도 병설유치원까지 데려다 주고 유리문을 통해 동생이 완전히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혹시라도 늦었을지 모를까 싶어 교실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가는 큰애를 보는 것은 감동이었습니다. "아!~" 하는 탄식이 불탄도 모르게 부지불식간 터져 나왔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나고 성장해 가는 것을 왜 부모의 잣대로 계속 저울질을 해야 했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지요.


아이들 방 중심으로 본 우리집 / 이미지 크게보기 클릭

큰애가 자기 방에서 노는 모습 / 이미지 크게보기 클릭

링던지기 게임놀이 / 이미지 크게보기 클릭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인 오늘도 언제나처럼 많은 부모들이 하교 무렵 쯤 되면 교문에서 또는 교사 입구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맞벌이 부모를 대신하여 학원 선생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먼 거리에 있는 예·체능학원인 경우에는 노랑색 봉고차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글귀를 부착시킨 채 시동을 꺼뜨리지 않고 대기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어찌보면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것이 앞으로 끝없이 펼쳐지게 될 경쟁세계로 뛰어듦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입학자녀의 학부모들은 학원에서 보내준 팜플렛이며, 학교에서 보내준 방과후 학습 프로그램 안내장을 오늘도 열심히 들여다 보면서 자기 자녀가 지금보다(솔직하게는 남들보다) 뛰어난 발달상황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거겠지요.

어차피 부모는 어떤 것이라도 선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허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선택이라는 것 자체가 아이의 내일을 바라는 마음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충분히 숙고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니까요. 남들이 하니까 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고 따라갈 수 있는 것을 개발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거지요.


큰애가 만든 연필꽂이, 불탄이 예쁘게 연필을 깎아 줬어요.




그런 의미에서 불탄도 역시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아이가 행복한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웃음 짓는 내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불탄은 부모로서 행해야 의무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가장 행복하게 오늘을 생활하고,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일 테니까요.

어젯밤에는 잠을 자고 있던 큰애의 머리맡에는 오늘 아침에 자신이 학교에 입고 갈 옷들이 정갈하게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은애가 입을 옷도 미리 챙겨져 있었네요. 아마도 큰애가 동생 것까지 챙겨놓은 것 같은데 여지껏 한번도 못보던 광경이라 무척 이채롭다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이렇게 매일같이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또 내일은 어떤 모습을 아이가 보여주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주 살짝 두려움도 생기게 되더랍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훨씬 더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약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네요.

그렇게 오늘이란 시간은 새로운 모습을 위해 다시 시작하는 의미를 담고 있나 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