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삼계탕을 아내와 두딸에게
불탄이 육류를 좋아해서 그런지 우리 두딸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먹고싶어 하는 것이 고기랍니다. 그래서 어제는 문득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삼계탕을 해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불탄 역시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삼계탕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순간부터 입안에 군침이 생기는 것이 너무나 먹고싶어졌고 말입니다.
사창동 재래시장에 있는 닭집에 들렀더니 저녁시간인데도 삼계탕용 영계가 꽤나 많이 반입되어 있더군요. 한두마리 남아있는 걸 사게 된다면 왠지 찝찝함이 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값을 물어보니 마리당 3천원이라 하더군요. 요즘은 시장에서도 물건값 흥정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그냥 군소리하지 않고 두마리를 담아달라고 했습니다. 잔손질을 조금 더 하시는 아저씨를 보다가 진열대 위로 눈을 돌렸는데 불탄에게 꼭 필요한 것이 보이더군요. 삼계탕이나 오리탕에 넣을 수 있도록 당귀와 같은 한약재가 티백처럼 포장되어 있는 거였습니다. 2000원이라는 아저씨 말을 듣고 그것도 한팩 함께 담아왔습니다. 집 앞에 있는 슈퍼에서 소주 작은 패트 하나를 2100원 주고 사오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
두딸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찜솥을 찾아 삼계탕 끓일 준비를 정신없이 하기 시작합니다. 손질을 다 해서 가지고 왔다고는 하지만 딸아이와 아내가 먹을 건데 그냥 조리에 들어갈 수는 없더군요. 내 손으로 흐르는 물에 다시 한번 깨끗하게 씻어줘야 개운해지는 건 어쩔 수 없겠더랍니다.
160ml 계량용기로 쌀 두개를 담아서 깨끗이 씻은 뒤 찜솥에 물을 절반 조금더 올라오도록 받고는 씻어놓은 쌀을 먼저 옮겨 담습니다. 마늘 한주먹과 지난 설에 썼던 대추도 한주먹 넣고요. 그리고 닭집에서 사온 삼계탕용 팩을 넣고는 센불에 끓이기 시작합니다.
부르르 한번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집에 와서 미리 한번 더 손질한 영계 두마리를 예쁘게 담고 센불 보다는 조금 약한 불로 다시 삶기 시작합니다. 어느 정도 삶아졌는지 삼계탕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쯤 없는 날 생강 대신 생강가루 반큰술과 소주잔으로 두개 정도 되는 소주를 누린내 제거 목적으로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센불로 한번 더 신나게 끓여주지요.
밥상에 김치와 멸치볶음, 오이지 무침을 올려 놓고는 비빔밥용 그릇에 영계 한마리를 담아내고는 거실 TV 앞으로 옮겨가면서 두딸을 불러냅니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지요. 주방용 흰장갑 위에 1회용 비닐 위생장갑을 덧끼고는 열심히 잘게 찢어주는데 아이들 먹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가질 못하겠더랍니다.
연신 맛있다는 말을 하면서 열심히 먹어주는 두딸에게 이게 바로 "할머니께서 아빠한테 해주셨던 삼계탕이란다."라고 말을 해줬더니 "그래서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라며 더욱 즐겁게 먹어 주더군요. 고맙고, 대견하고 뿌듯한 순간입니다.
영계 한마리가 거의 없어질 때 쯤 국그릇 3개에 할머니표를 모방한 아빠표 닭죽을 담아와서 두딸에게 한그릇씩, 그리고 불탄 앞에 한그릇을 내려놓고 소금으로 간을 해줍니다. 뜨거운 걸 호호 불어가면서 정말로 맛있게 먹더니만 글쎄 작은애는 그 이후로 국그릇의 1/3 정도 되는 닭죽을 두번이나 더 달라고 해서 먹더군요. 정말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답니다.
어느 정도 양이 찼는지 두딸의 숟가락질이 느려지기 시작할 때 불탄은 아이들에게 찢어주고 남은 닭뼈를 재활용(?)하는 재미를 느껴가면서 남아있던 소주를 한 꼬뿌씩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안주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살들은 남아 있더군요.
그렇게 남은 소주와 뼈조각 사이에 붙어있는 살과 닭죽을 안주삼아 남은 소주를 다 비우고 있을 때 뽈록하니 튀어나온 배를 두들기던 아이들도 졸리워 하기 시작하더랍니다. 얼른 칫솔에 치약을 묻혀주고 양치와 세수 하는 걸 도와주고는 밥상을 치웠죠. 그렇게 아이들이 겨우 잠이 들 때 쯤 되니 아내도 퇴근하여 집에 돌아왔고요.
아내 몫으로 남겨놓은 영계 한마리(위쪽)와 삼계탕용 재료팩(아래쪽)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 포기김치 하나를 급한 마음에 가위로 썰어서는 밥상에 올려 놓습니다. 그런 남편을 아내는 재미가 있었는지 아주 좋아라 하면서 소리까지 내며 웃더군요. 일부러 저녁을 집에 와서 먹으라고 전화를 했었는데 아마도 아내는 뭔가 요기가 될만한 것을 사들고 왔을 거란 기대를 했던 모양입니다.
아내를 위해 남겨놓은 영계 한마리와 닭죽을 다시 새롭게 뜹니다.
어머니표 닭죽을 모방한 남편표 닭죽과 잘 익은 영계, 그리고 가위로 자른 포기김치 그런데 이렇게 직접 끓인 삼계탕을 내어 주면서 먹게 하였으니 놀랍기도 하고 또 즐겁기도 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