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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아내가 퇴근 무렵에 뭐가 먹고싶다는 문자를 자주 보내네요. 그럴 때마다 없는 재주에 애써 만들어주면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먹어주는 아내가 밉살스러우면서도 고맙기도 해서 어찌되었거나 들어주려고 합니다. 삼계탕 이후에 며칠 잠잠하더니 오늘은 칼국수가 땡겼나 보네요.


'알았다, 알았어. 이 화상아!' 속으로는 궁시렁대면서도 뭐가 먹고싶다는 아내의 문자가 이젠 싫지가 않더랍니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시간에 퇴근하는 아내이니 만큼 아이들 때문에라도 밖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야식집 비스므리 한 곳에서 사들고 오는 음식들은 내심 찝찝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왜냐고요? 일단 돈에 비해 맛과 양이 형편없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겠고, 두번째는 아무래도 맛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자극적인 감미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이젠 아내나 불탄이나 조금씩 건강을 신경써야 할 때이니 말입니다.

냉장고를 열어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있다는 것은 감자수제비 반봉지와 칼국수 4줄(4인분)이 전부입니다. 냉동실에는 지난 토요일에 쟁여놓은 목삼겹살이 있습니다만 늦은 밤에 고기 굽는다는 게 썩 내키지 않을 뿐더러 오늘은 아내가 칼국수에 필이 꽂혔으니 메뉴에 대한 선택은 할 수가 없습니다.

자! 그럼 야채도 하나 없는 상태에서 칼국수는 끓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궁하면 어쩐다고요? 네, 맞습니다. 통하게 되어 있는 거지요.


지금부터 재료가 하나 없는 상태에서도 그럭저럭 먹을만한 칼국수를 끓여보겠습니다. 참고로 이 '불탄표 칼국수'를 만드는 레시피(라고 하기에는 너무 민망하네요.)를 따라하시면 일단 라면보다는 훨씬 맛있다는 것과, 적어도 맛없다고 상을 물리는 굴욕은 절대로 당하지 않을 것이니 절대 미리부터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비록 미식가의 반열에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까탈스러운 입맛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불탄이 곧잘 해먹는 메뉴이니까 말입니다. ^^

참...... 정말 이 포스트를 쓰기 위해 혼자 널도 뛰고 장단도 맞춰 봤습니다만 한가지만 먼저 말씀드릴께요.

대한민국에서 요리블로거로 활동하시는 모든 님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음식을 만드시면서 그토록 맛깔나게 사진까지 담으실 수 있는지요?

초보인 저는 그냥 흉내만 냈으니 인증샷의 용도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정말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거리용 멸치입니다. 너댓개만 준비하면 됩니다.

마른새우지요. 끝물이 되다보니 가루가 많네요.


다시마 두조각이 국물 맛에 영향을 주더라고요.

손난로 모양의 철제 제품보다 훨씬 편한 다시백입니다.


다시국물을 내기 위해 냉동실에 있던 국거리용 멸치를 밀봉시켜 놓은 봉다리와 마른새우가 담겨져 있는 락앤락 플라스틱통을 꺼냅니다. 차단스(?)에 있는 기다란 다시마에서 조그맣게 두조각을 내는 것도 잊으면 안되겠지요? 다시백 한장을 꺼내 국거리용 멸치와 마른새우를 적당히 채워넣고 입구를 뒤집습니다.(다시백 자체가 속을 채우고 뒤집기 편하게 되어 있어요. ^^)


칼국수는 1인분만 끓이면 되니 물 800ml를 계량용기에 받아 편수냄비에 붓고 가스불을 최대한으로 올립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시팩과 다시마를 넣고 그야말로 팔팔 끓여냅니다.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다시백은 주방용 젓가락으로 건져서 싱크대로 다이빙 시켜버리면 됩니다. 막말로 단물만 빼먹고 가차없이 버리는 거죠. ㅡ.,ㅡ (사람 사이의 인맥에서는 절대로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

냉동새우. 그냥 한주먹 집어서 넣습니다. ^^

냉동새우까지 합세한 육수는 칼국수 면발을 기다립니다.


여기에 냉동새우(다시국물을 내기 위해 썼던 마른새우가 아니랍니다. ^^)를 먼저 넣어줍니다. 아무래도 칼국수를 넣고 나서 냉동새우를 넣으면 면을 익히던 다시국물이 일순간 온도가 낮아지면서 쫄깃한 면발에 제동을 걸게 되니까요. 참고로 라면을 끓일 때도 분말스프와 건더기스프를 먼저 넣고 나서 팔팔 끓을 때 면을 넣어주는 게 훨씬 쫄깃하게 드실 수 있답니다. ^^

이젠 접시에 풀어놓은 칼국수 1인분을 끓는 물에 넣고 주방용 젓가락으로 풀풀 저어주면서 엉겨붙거나 냄비에 들이붙지 않게 신경을 써줍니다. 잠시 후면 칼국수가 끓기 시작하는데 보르르 하니 거품과 함께 냄비가 뚜껑을 향해 하이킥을 날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하죠? 네, 그렇습니다. 뭐, 웬수질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을 테니 그냥 뚜껑과 편수냄비의 몸체를 분리시켜줍니다.

응? 정확히 반큰술이냐고요? 그거까지는......

국간장 두큰술. 숟가락 크기가 얼마냐고요? 그것도...


이어서 간마늘 반큰술과 국간장 두큰술을 넣어줍니다. 그리고......

응? 벌써 다 됐네요. 더 넣을 것이 없습니다. 초반에 말씀드렸다시피 재료가 없는 상태에서 끓이는 칼국수이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냉장고를 다시 뒤져봐도 더 이상 나올 게 없으니까요. ㅠ.ㅠ

근데 간은 안보냐고요? 뭔 칼국수 정도에 간까지 본답니까? 대충 비슷하게 맞을 겁니다. ^^


그래도 불안하신 분들께서는 살짝 티스푼 하나에 해당하는 양의 다시다를 넣어주셔도 됩니다. 감미료에 민감한 미감을 자랑하시는 님들께서는 그냥 생략하셔도 좋고요. 맹맹하면서 담백한 맛에 다시다를 첨가시키게 되면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진한 맛이 전해지는데 실상은 별 차이를 느끼지는 못할 겁니다. 하하......

이렇게 해서 다 끓은 칼국수를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이 있는 집에서는 반드시 올려야 할 대표적인 반찬인 잔멸치볶음과 불탄이 가장 좋아라 해서 떨치지 않는 오이지무침을 함께 내어 밥상에 올렸습니다. ◀ 인증샷 필 OK~


결국 아내는 자기 입맛에 맞는 반찬을 하나 더 꺼내가더군요. 그게 뭐냐고요? 바로 지척에 살고 계시는 불탄의 어머니(아내의 시어머니라 해야 되겠죠?)께서 정성들여 만들어주신 열무(총각?)김치였답니다. 불탄의 어머니가 만드시는 김치 솜씨는 2년 6개월 전에는 서울 목동에서 그 명성을 날리시더니 이후 청주로 내려온 다음부터는 사창사거리를 들썩거리게 만드시니...(이궁, 자식이 부모자랑하는 것도 팔불출인가요?)

어쨌든 오늘도 미션 성공입니다. 아내의 입가에는 함박 웃음이 걸렸고, 늦은 시간에 칼국수를 정말 끓여야 하나에 대한 귀차니즘을 박지성의 슈팅만큼 강력하게 질러버렸더니 마음까지 홀가분해집니다.

근데......?
다음엔 또 뭘 해달라고 할지 벌써부터 걱정되는 건 왜 그런 걸까요?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