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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폭염이 얄미웠던지 해거름 무렵부터 장하게 비가 내리신다.

우산을 받쳐쓰고 잰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하는데 낯선 풍경이 걸음을 막는다.
큰 빗방울 하나라도 정통으로 맞는다면 이내 날을 힘마저 잃어버릴 이 빗속에서
그렇게 꿀벌 두 마리는 정신없이 꿀을 따고 있었다.

폰카를 들이밀자 몇 번을 저공비행하더니만 저도 갈길이 바쁜지 상관하지 않는다.
우산으로 비를 막아 조금은 편하게 해주려니까 제놈이 어찌알고 두 날개 치켜들며 인사를 한다.




이궁……, 이런 날 엣찌있게 최신형 카메라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저 멋진 모습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작품을 기필코 만들었을 텐데……
없는 게 죄라 생각하니 처량해진다.
비까지 오니 더욱 더 가련해진다.

"어이! 꿀벌 형제들. 에지간히 땄으면 술 한 잔 하세. 꿀처럼 달콤한 막걸리로 내가 쏨세."

비 오는 아파트 입구에서 정말로 넋나간 대사를 읊조리고 있으려니 절로 청승이 형을 삼겠다고 달려오는 것 같다.




그런데 너희들……
기껏 꿀 따서 가다가 빗방울에 뒷통수 맞고 기절해 버리면 말짱 도루묵 되는 거 아니냐?
내 그것이 몹시도 궁금하지만 소변이 마려워 오늘은 그냥 갈란다.
비 맞는 게 안타까와 우산 씌어준 거 기억한다면
나중에라도 너희가 가지고 있는 벌침의 독성이 얼마나 될지 시험하는 대상에서 우리 아이들만은 열외시켜 주기 바란다.

들어 줄 수 있겠지?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