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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고 싶을 때면 사진첩을 꺼내게 된다. 아주 특별한 기억의 냄새가 코끝으로부터 머릿속으로, 그리고 그리움을 담은 환영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험을 몇 번 했던 터였다.

낙산의 파도는 아주 파랗다. 하얀 포말의 부서짐은 마치 한 잔의 술을 권하는 어머니의 웃음을 닮은 듯 부드럽고 포근하다. 이른 아침 민박집에서 채비를 갖추고 낙산사로 오르면 부지런한 아침 새들의 쫑쫑거림에 귀를 열 수 있고, 꼭대기에 이르면 그 엄청난 크기에 완전히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해수관음상이 반긴다. 그 해수관음상이 바라보는 곳을 따라 시선을 던지면 암청색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가끔 이른 관광객을 위해서 곁붙어 있는 기념물 매점에서 찬불가가 흘러나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해수관음상의 발치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두 손을 모두면 마치 속세의 먼지를 탁탁 털어버리는 탈속을 경험한다.

의상대에서 보는 바다는 또 어떤가? 홍련암에서 맞는 성스러운 바람의 향기는 또 어떤가? 입안이 타들어가는 갈증과 너무도 닮은 듯한 그 보고픔. 어쩌면 추억의 한 자락을 잡고자 하는 애달픔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낙산의 바다가 보고 싶다.

'삐이이익~' 갑자기 들리는 초인종 소리가 상념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끌어내린다. 지금은 타계한 원로 코미디언이 입으로 모사하는 미사일 날아가는 소리와 정말로 흡사한 우리 집 초인종 소리. 난 이 초인종 소리를 정말로 싫어한다.

일요일 오후여서 그랬는지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어디로든지 데리고 가달라며 생떼를 쓰기 시작한다.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 영 탐탁지 않았나보다. 아내의 얼굴에는 쉬고 싶어 하는 모습과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외식으로 모면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잘 섞여 있다. 서울과는 다르게 갈만한 곳이 없는 이 도시는 그것도 아이들을 앞세워 잠깐이나마 외출하기란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 시장이나 구경하자. 사창시장일 거라고 미리 짐작하며 시무룩해 있는 아이들에게 육거리로 간다면서 달래며 서둘러 집을 나선다. 채 20분도 되지 않아 도착한 육거리의 시장 입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얼굴과 손에 가득 담고 있는 할머니들이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야채를 다듬는 손길은 고되 보이기는 하지만 놀림은 빨랐다. 됫박에 얹기 위한 알밤을 쪼그려 앉아서 광을 내는 손길에도 미약한 희망을 담고 있다. 새벽잠을 쫓으면 쪄냈을 옥수수빵이며 찐빵을 좌판에 바꿔 올리는 모습에는 이미 익숙한 냄새를 흘려보낸다.

엄마 손을 잡고 따라나섰던 어릴 적 보았던 광경이 육거리 시장 곳곳에는 아직도 남아있다. 지나가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 내 어렸을 때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으니.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떡집 앞에서 멈춰 서더니 뭔가 얘기를 주고받는다. 인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 곳으로 가는 것으로 봐서 아이들이 엄마한테 볼일을 보고 싶다고 했는가 보다. 잠시 기다리며 점포에서 내 놓은 품목들을 살피고 있는데 젓갈과 해산물을 만지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유독 눈에 띈다. ‘아! 어디서 봤을까?’ 익숙하게 느껴지는데 쉽게 떠오르지 않는 기억의 답답함에 조바심을 내고 있을 때 볼일을 마친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가 다가온다. 궁금함을 가득 담은 눈으로 아내에게 물어본다.

“저 할머니 어디선가 뵌 분 같지 않아?”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그래? 음...... 어디서 뵈었을까?”
“원래 할머니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맞다. 이제야 생각이 난다. 그 할머니의 손길이 꼬막 위로 올라갈 때에야 비로소 떠올린 그 기억은 집을 나서기 전까지 간절하게 그려 보았던 낙산의 풍경이었다.

이른 아침에 올랐던 낙산사의 바람은 바다를 가득 담고 있었어. 품안으로 들어오는 그 서늘한 한기를 느끼면서도 좀처럼 이제 그만 내려가자는 말을 서로 하지 않았지. 그렇게 해수관음상에서, 그리고 의상대와 홍련암에서 내려다 본 바다를 가까이에서 느껴보려 철지난 모래사장을 걸었었지. 운치를 아는 사람들이었을까? 우리 말고도 네댓은 되어 보이는 커플들이 그들만의 발자국을 그 해변에 남기고 있었지. 아마도 그 발자국에는 나름대로의 사랑과 그 사랑을 약속하는 밀어들이 담겨 있었을 거야. 우리가 나눴던 그 많은 이야기를 파도가 함께 듣고, 바람에게 퍼뜨렸겠지.

그리고 저 시장 속에서 꼬막에 손길을 주시던 할머니와 아주 흡사한 모습의 또 다른 할머니가 그곳에 계셨던 거야. 낙산비치호텔을 오르는 길 쪽에 벼랑같이 둘러쳐진 절벽을 앞에 두고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겼었어. 플라스틱 갈색 다라에는 바닷가에서 갓 올렸을 법한 여러 해산물이 담겨있었고, 구공탄 위에는 홍합국물이 얹혀 있었을 거야.

지금까지 미뤘던 아침식사를 대신하여 간단하게 먹어보지 않겠냐는 내 말에 반가운 눈빛을 띄었었지. 아침부터 소주를 마신다는 것이 뭔가 어색했지만 그래도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의 용기는 실어주는 것 같았어. 이것저것 섞어서 내어주신 해산물 한 접시를 게 눈 감추듯 먹고 나니 추억 속의 할머니는 싱싱한 가리비회 한 접시를 더 권하셨지. 사실 가리비는 익혀 먹는 것보다 회로 먹는 것이 더 일품이라며 호기롭게 내어 놨더니 갑자기 배가 아파진 스물 한 살의 아가씨는 젓가락만 빨아야했지.

갑자기 시장기가 밀려온다. 그 때의 그 가리비회가 미친 듯이 먹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아직 아이들에게 회를 먹여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런 모험을 할 수가 없다. 시장 옆쪽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순대집이 보인다. 지금은 다른 어떤 곳을 찾아다니기 귀찮을 정도로 뱃속의 식충이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그 놈의 가리비 때문이다. 먼 추억 속의 한 장면을 이끌어 낸 저기 꼬막 할머니 때문이다.

시장 순대집만 생각하고 들어선 곳은 입이 떠억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컸고, 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온 것처럼 왁자지껄한 손님들로 가득 차있다. 얼큰한 곱창볶음 한 판을 스물 한 살의 그 아가씨와 함께 먹는다. 그 때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마시지 못했던 소주를 스물 한 살의 그 아가씨가 오늘은 잘도 마신다. 섞어서 달라고 한 국밥을 먹는 아이들도 오늘은 시장구경에 지치고 배고팠는지 너무나 잘 먹는다. 인상을 쓰면서 걷어낼 줄 알았는데 국밥에 들어있는 순대와 머리고기, 그리고 부속고기들을 하나도 건져내지 않고서. 아직까지 그것들을 먹지 못하는 그 스물 한 살의 아가씨의 눈에는 놀라움이 담겨 있다.

“사실은 꼬막 할머니를 보면서 낙산이 생각났어.”

“아! 그랬어요?”
“응. 가리비회가 생각났고,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
“근데 왜 여기로 왔어요?”
“애들은 아직 못 먹을 거고, 그리고 여기저기 찾으러 다니기도 귀찮을 거 같아서.”
“네......”

대답을 흐리는 서른다섯의 아내의 눈에도 낙산이 보인다.
그 바다가, 그 파도가, 그 바람이.
그리고 지금도 틈만 나면 얘기하는 그렇게 두고 온 가리비회가.


PS.   본 포스트는 2009년 9월 7일, 알라딘과 네이버블로그에 송고한 글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