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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의 나이에 이른 사람들은 차범근 해설위원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차범근 해설위원이 서독 분데스리가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당시(1980년대 초)에는 항상 일요일 밤 12시만 되면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는 차범근 선수를 보기 위해 TV를 켜곤 했었지요.

차범근 선수는 그동안 한국 축구선수에게는 볼 수 없었던 스피드가 있었습니다. 아주 강력한 무기였지요. 심지어 차범근 선수가 뛰는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자는 농담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최고조에 달하는 스피드로 상대편 진영을 향해 쇄도해 들어가는 차범근 선수에게 제대로 패스를 해줄 수 있는 한국팀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냅다 뛰어 들어가는 차범근 선수에게 찔러주는 패스의 대부분이 차범근 선수가 뛰어들어가는 앞쪽에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차범근 선수가 이미 지나가고 없는 자리에다 뒤늦게 넣어주는 패스이기 때문입니다. 서독에서 뛰고 있는 차범근 선수의 경기력이 국내 선수들과 호흡을 맞출 경우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팀 국가대표로서의 차범근 선수보다 서독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차범근 선수가 멋있었던 이유에는 함께 호흡을 맞춰줄 수 있는 선수가 있느냐 없느냐에도 커다란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차범근 선수의 주력은 100m를 11초F에 주파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또한 분데스리가에 출전한 308번 경기에서 98개의 골을 넣었고 4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차범근 선수가 넣은 98골은 모두 필드골이었지요. 단 한개의 패널티킥 골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6강전에서 일본과 파라과이의 경기를 해설하였던 차범근 해설위원은 방송에서 여담으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토해냈었지요. 자신이 패널티킥을 차는 순서가 절대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랬다고 하는......

차붐이라는 이름 자체가 상대팀에게는 위협의 존재였던 차범근 선수는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10년 동안 언제나 주전선수였습니다. 또한 308번을 치렀던 경기 중에서 딱 1번만 후반전에 출전했을 뿐 언제나 선발출전을 도맡았었지요. 불탄과 같은 연배인 40대 이상의 축구팬들에게는 그야 말로 국민적 영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 차범근 선수도 처음 서독 분데스리가로 가게 될 때 한국정부는 그의 앞길을 수차례 막아섰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국민들의 반대가 있었지요. 이후에 한국정부는 차범근을 국내로 소환시키기 위해 군대 징집을 명목으로 내세웠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 국민들은 차범근 선수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줬지요. 아마 그런 국민의 열화같은 성원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5개월의 병역훈련을 마치고 서독으로 돌아가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차범근 해설위원은 없었겠지요.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차범근이란 이름은 당시의 스카우터 사이에서나 겨우 한두 번 정도 언급되다 말았을 축구변방국의 이름없는 검은머리, 검은눈의 그렇고 그런 노랑둥이 중 한명이었을 거예요.

어쩌면 지금 차범근 선수의 아들인 차두리 선수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선진축구를 배워와서 한국축구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차범근 선수의 분데스리가 진출을 지지하고 응원했던 국민의 정서가 다시 한번 절실하게 필요한 때지요.

이미지 인용 -guardian.co.uk © Guardian News and Media Limited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서 우루과이와의 경기를 치르고 난 뒤 차두리 선수는 곧바로 스코틀랜드로 날아갔습니다. 바로 셀틱의 메디컬테스트를 받기 위함이었지요. 결과적으로는 셀틱의 메디컬테스트는 무사히 끝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셀틱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바로 영국 이민국에서 발급하는 노동허가서를 받아내는 일입니다.

이 일은 대한축구협회가 지원사격을 해줘야 가능한 일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차두리 선수는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노동허가서를 받는데 필요한 워크퍼밋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워크퍼밋 기준이라는 것은 '최근2년간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75% 이상을 출전해야 한다는 것'인데 차두리 선수는 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이에 차두리 선수는 대한축구협회에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던 사유서와 추천서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해당 구단의 욕심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순호 선수의 해외진출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남아공에서 마지막 월드컵을 치른 안정환 선수도 대한축구협회와 국내구단의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에 굴곡있는 선수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월드컵 첫 원정 16강을 달성한 태극전사들의 해외 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병역면제라는 당근을 놓고 설전()을 벌였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습니다. 대한축구협회를 비롯한 해당 유관단체들은 과거에 차두리 선수의 아버지인 차범근 선수에게 아픔을 줬던 것에 대한 보상이란 생각을 해서라도, 16강 진출에 따른 국가적 경제효과가 16조원까지 이른다는 민간연구단체의 발표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차두리 선수의 셀틱행 티켓발행에 기꺼운 마음으로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합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