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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최절정을 이루었던 8월의 그날은 외국인들이 끔직히도 싫어한다는 13일의 금요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오후 5시를 향해 천천히 접근해가자 청주 사창동의 한 좁은 차로변에는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내 북새통으로 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궁금한 생각에 아파트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얼른 인심 좋아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께 다가가며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일이예요?"
"오늘 저기서 치킨 한 마리를 5,000원에 준다네요. 그래서 번호표 받으려고 저렇게 난리난 거래요. 애아빠도 얼른 가서 번호표 하나 받아와요."

이미 젖을대로 젖어버린 손수건으로 콧잔등의 땀을 훔치시며 대답을 해주시는 아주머니는 한 손에 쥐고 있던 동그란 모양의 홍보물을 내밀며 보여주셨는데 거기에는 '19'라는 번호가 적혀있었습니다. 아마도 치킨을 사갈 수 있는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었겠죠.


그때 가만히 동네 주민들이 몰려있는 한 곳을 쳐다보니 새로 오픈한 조그마한 치킨매장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눈에 들어온 현수막에는 7세 이상의 방문고객 200명을 한정하여 오후 5시부터 선착순으로 후라이드치킨 한 마리를 5,000원에 팔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물론 치킨은 1인당 한 마리만 살 수 있었고요.


새로 오픈하는 매장에서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닌데 매장 반대쪽 차로변을 따라 죽 앉아서 기다릴 정도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을 보니 왠지 그냥 신기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었습니다.

'5,000원에 치킨 한 마리를 판다.'는 말은 어느새 '5,000원에 치킨 한마리를 준다.'로 바뀔 만큼 5,000원이라는 치킨 가격은 싸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특히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께서는 손자·손녀에게 10,000원짜리 한장으로 치킨을 양껏 먹이고 싶었는지 눈치껏 번호표 2개를 받아냈고, 매장에서도 모른 척 하며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결국 불탄도 두딸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 '127'이 적혀있는 홍보물 번호표를 받아들고 아파트로 돌아왔고, 2시간 정도 지난 뒤에 치킨 한 마리를 5,000원과 번호표로 맞바꿀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자주 사먹었던 5,000원짜리 오마이치킨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기대가 컸던 탓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치킨의 양과 맛은 조금 실망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8월의 어느 무더운 날, 이 5,000원짜리 치킨은 비록 단 하루만에 끝난 이벤트였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을 남겼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금 이 날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때문이었을 테고요.

그러고 보니 치킨 이름도 비슷하군요. 이곳 브랜드는 '큰통", 롯데마트는 "통큰"이니 말입니다. 현재 큰통치킨은 10,000원부터 12,000원 사이에서 가격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직접 전화주문을 해놓고 가지러 가면 1,000원을 할인해주니까 크리스피 한 마리가 9,000원이란 얘기지요. 물론, 여타의 치킨 브랜드가 치킨을 살 때 함께 끼워주는 콜라도 이곳에서는 주지 않는데 그깟 콜라 하나가 뭐라고 사들고 올 때의 느낌은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비교적 저렴한 가격임에도 틀림이 없는데 이곳으로 치킨을 선뜻 사러가게 되지는 않더랍니다. 왜냐하면, 아내와 둘이서 먹을 때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어린 두딸이 먹기에는 파우더의 향과 맛이 조금 맵기 때문입니다. 순살치킨은 맵지 않아 좋지만 가격에 비해 양이 적은 것 같고요. 오늘 이 포스트를 쓰기 위해 혹시나 하고 본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니까 아이들이 먹기 좋은 순한맛크리스피치킨도 갖춰져 있던데, 이곳에서는 어떠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가계비가 빠듯한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이제 막 생후 2개월을 넘어선 막내딸 때문이라도 외식을 한다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허나 가끔 뭐라도 사들고 가거나, 배달주문이라도 해야 되는 경우에는 딱히 마땅한 것이 없습니다. 꼭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이 저렴하고 푸짐한 먹거리가 가까운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현실성 없는 상상을 해보는 밤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