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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둘러본 자리, 두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댁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할머니댁으로 놀러가게 되었다고 공부할 책 몇권과 일기장 등을 챙기던 모습이 뒤늦게 생각나더군요.

요즘, 완전히 왕따가 되고 있는 불탄입니다. 특히 잠자리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아내는 이제 백일이 다 되어가는 셋째딸 옆에 거의 붙어있고 두딸은 아빠를 대신하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죽어라 껴안고 지내니까요. 그러고보니 불탄을 왕따로 만든 것은 결국 산타할아버지인가 봅니다.

지난 화이트 크리스마스날, 산타할아버지는 착한 두딸의 선물로 돌고래 인형 한쌍을 아파트 현관 앞에 두고 갔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키 만큼이나 커다란 돌고래 인형을 하나씩 안아들고 너무나 좋아라 했었지요.


물론 크기에 있어 분홍색 돌고래가 더 컸기에 자연스럽게 큰딸이 분홍색 돌고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요, 평소 같으면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을 둘째딸이라 할지라도 산타할아버지가 미리 정해준 듯한 선물에는 군소리를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날부터 두딸은 각각 자신의 돌고래 인형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집도 만들어주더니 이제는 아예 껴안고 삽니다. 이전까지는 서로 엄마 옆에서, 아빠 옆에서 자겠다고 싸우던 아이들이었는데 말이죠. 서로 자신의 곁에 돌고래 인형의 잠자리를 만들어주니 결국 불탄의 잠자리는 자연스레 웃풍이 넘실대는 창문 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두딸에게 이런 불탄의 처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잠잘 때마다 이렇게 돌고래 인형으로 벽을 쌓아둘 거냐고.
왠지 아빠가 돌고래 인형보다 못한 것 같아 서운하더라고.

불탄의 말을 들은 두딸은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아빠! 분홍이는 제가 보살펴주지 않으면 너무나 슬퍼할 거예요."
"네? 그래도 저는 아빠가 더 좋아요.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아빠를 더 좋아할 거예요."

두딸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를 그렇게 참새처럼 지저귀기 시작했습니다. 어리석은 불탄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먼저 말하겠다는 듯 앞다투며 쏟아낸 말에 입을 귀에다 걸었으니까요.

그래도 꽁한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불탄은 아이들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었는데 두딸은 그런 아빠를 달래기 위해서인지 지금까지 잘 지켜주고 있습니다. 네? 그게 뭐냐고요? 가끔 막둥이 동생도 좋아할 테니 빌려줘야 한다고 했지요. 두딸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내걸었던 세딸아빠 불탄의 소심한 복수라고 해야 할까요?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