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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르륵... 드르르륵..."

진동으로 맞춰져 있는 휴대폰이 아우성을 칩니다. 아내로부터 걸려왔을 게 틀림없는 그 휴대폰의 진동소리가 오늘은 왠일인지 "문자왔숑~ 문자왔숑~"하고 말하는 길라임의 목소리처럼 들려옵니다. 아! 요즘 이상하리 만치 끝물부터 보게 된 시크릿가든의 여운을 오래도록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더니만 어느새 불탄도 시크릿가든 폐인이 되어 있었나 봅니다.

"떡을 얼마나 맞춰야 할지 몰라서요."
"백설기랑 수수팥떡이랑 그냥 한판씩만 맞추자고."
"그것만 해도 될까요?"
"그냥 어머니집하고 형님 가게만 돌리자고. 요즘같이 다들 힘들어 할 때 백일떡이라고 돌리면 받는 사람들도 부담이잖아?"
"네. 그럴께요."


셋째딸 예원이의 백일떡 1 - 수수팥떡


셋째딸 예원이의 백일떡 2 - 백설기



그렇습니다. 오늘은 지난 10월 6일에 태어난 막내딸의 백일입니다. 아직까지는 병치레 한번 없이 예쁘고 건강하게 커주고 있는 아기가 너무나 고맙습니다. 사는 게 힘들어 남들 만치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백일떡 정도는 차려주고 싶더랍니다. 다행히 동네 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는 떡집에서는 떡이 나오는 대로 집까지 배달을 해주는가 봅니다. 덕분에 아내는 이리 추운날 다시 떡을 찾으러 가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네요.

어쨌든, 이 세상에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모두 해주고 싶은 마음을 백일떡으로 달래며 편지에 남은 사랑을 남겨보렵니다.




아빠의 소중한 셋째 딸, 예원아!

무슨 말을 하기에 앞서 오늘 백일을 맞은 네게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해주고 싶구나. 축하해. 아주 많이.

정확히 100일 전, 네가 태어나던 날의 새벽은 작은 별빛들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고, 엄마와 너를 이어주던 탯줄을 잘라내던 아빠의 가슴은 벅찬 감동으로 심하게 떨렸을 게다. 그리고 네가 엄마의 자궁에다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태어나던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히 많았던 기억들이 아주 순식간에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처럼 느꼈던 게야.

두 언니가 그러했듯이 너 역시 엄마의 젖을 빨아보는 복 만큼은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났더구나. 어쩐 일인지 엄마는 두 언니 때에도 젖이 돌지 않았지. 지금도 엄마는 두 언니에게도 그랬듯이 네게도 젖을 물리지 못한 것을 가장 미안해 하고 있다는 걸 너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게 아빠의 솔직한 심정이란다.

넌 아빠에게 많은 동기를 주고 있단다. 생활을 해 나갈수록 더욱 더 나태하지 않게 하고, 거짓 행동을 피하게 하지. 약속을 지키게 하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하지. 흔들리지 않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고 있지. 강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약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일깨워 주지.

지금이니까 하는 얘기지만, 처음 네가 생명의 신호를 엄마에게 보냈었을 때 두 언니만으로도 벅차했던 아빠는 잠시 너에 대한 나쁜 마음을 먹었던 적도 있었단다. 하지만 시간은 곧 아빠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갔고, 어느 사이에 넌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언니에게 복덩어리가 되어 있었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네 큰언니한테 기울이시는 정성이 지금도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네 큰언니가 1.69kg의 몸무게로 태어난 것만으로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세상을 향해 인큐베이터에서 힘들게 혼자 싸웠을 그 시간을 아빠를 비롯한 모든 가족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큰언니에 대한 연민은 사랑으로 포장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까.

작은언니에게도 어려움이 많았단다. 왠일인지 엄마는 작은언니를 뱃속에 갖고 있을 때 하혈을 자주 하더구나. 서울 개포동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 때였지. 어느 늦은 밤, 샤워를 하던 엄마의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려 오더구나. 놀라 뛰어들어간 아빠의 눈에 보였던 그 핏물로 얼룩진 타일 바닥은 지금도 생각하기 싫을 정도였지. 곧바로 아빠는 큰언니를 안아들고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탔어. 그리고 이대동대문병원으로 부리나케 달려갔지. 너무나 위험했던 큰언니의 출산과 소생을 맡아주셨던 그 노의사,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그 산부인과 전문의께 엄마의 상태를 보이려고. 결국 작은언니는 다음날 엄마의 자궁에 묶는 수술을 했고, 예정일이 다 되어가는 어느 눈오는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묶어놓은 실을 풀어내며 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단다.

그래서 너에 대한 걱정도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게야. 너무나 힘든 출산과정을 두 언니를 통해 충분히 겪어봤기에 아빠는 자신이 없었던 게지. 네게서도 생길지 모를 그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아빠는 정말로 감내할 자신이 없었단다. 허나 그에 대한 걱정은 기우로 끝나게 되었고, 지금은 이렇게 예쁘고 건강한 모습으로 아빠에게 기쁨을 주고 있고,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가 되고 있지.




사랑한다. 고맙다. 그리고 오늘을 축하한다.

지금처럼만 아빠에게 있어주렴. 아프고 힘든 것은 아빠한테 모두 다 넘겨주고 넌 그저 행복하기만 하렴. 아빠의 두 손이 부족하다면 두발을 손으로 만들어서라도 네게 모든 걸 주도록 할께. 네가 성인이 되어 네 반쪽을 찾아가는 그날까지 아니, 네가 필요로 한다면 아빠의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라도, 두 언니와 네게 만큼은 아빠가 가진 모든 것을 건네 주도록 하마.

자! 아빠가 쓰는 편지는 여기까지다. 공증을 하기 위해 아빠의 가슴과 이 블로그에다가 새끼손가락 걸며 약속하고, 도장도 찍었단다. 게다가 복사까지 확실히 했으니까 신용만큼은 확실할 거다. 이 편지의 유효기간은 무한대니까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이 편지를 무기삼아 아빠한테 내밀어 보려무나. 그렇게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주기만 바란단다.

"아빠의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다시 한 번 예원이의 100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그리고 아빠가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