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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밤 11시 20분에 방송된 KBS 심야토론의 주제는 "ISD(투자자 국가소송제), 한미FTA의 걸림돌인가?"였습니다. 여기에서 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것은 외국 투자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최근 여당에서는 ISD에 대한 문제 제기는 기우에 불과하고, 끝장토론 등 한미 FTA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진 만큼 더 이상 국회 비준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야당에서는 ISD는 국가의 정책과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사안인 만큼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상임위 점거농성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날 토론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유기준과 민주당 국회의원 추미애의 주장은 양당의 당론을 대변하는 입장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미 FTA를 처리해야 한다는 이재형 고려대교수와 꽤나 오랫동안 한미 FTA에 반대해 온 이해영 한신대교수의 논쟁은 들을 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심야토론을 통해 국민들은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해영 교수가 끈질기게 이의를 제기하여 답변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정부와 여당, 통상교섭본부에서 부정해 왔던 공공부문까지 ISD 협상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통상교섭본부에서는 공식트위터를 통해 공공복지분야는 개방에서 제외된다는 공언과 함께 "완전 괴담"으로 밀어붙이고만 있으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동이 아닐런지요. [관련 포스트 : 한미 FTA 저지를 위한 피 같은 외침, 정말로 같잖은 괴담인 거야?]


출처 - 한겨레신문


사실 이와 관련해서는 정부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거나, 우려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법무부에서 작년 9월에 방행한 ‘ISD 분쟁 사례집’에서도 투자자와의 분쟁시 대처할 수 있는 요령을 알기 쉽게 제시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11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언론매체에서도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 내용들을 저마다의 목소리를 통해 슬슬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쉬쉬~"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와 같은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진다는 것을 정부와 여당이 부담스러워 했다는 뜻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정부와 청와대, 그리고 여당에게 있어 국민의 권익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국민의 미래를 담보로 해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다시 처음에 언급했던 KBS 심야토론으로 돌아가서 한 남성이 전화참여를 통해 상수도사업을 놓고 벌인 볼리비아 정부와 벡텔의 사건을 여당측 대표로 나온 이재형 고려대교수는 벡텔이 겨우 400원만 받고 쫓겨났다는 결과만을 강조했었는데요,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습니다.

당시의 ICSID(국제중재기구)는 분명히 벡텔의 중재요청(이라고 쓰고 소송이라고 읽는다)을 간접수용의 형태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또한 벡텔로서는 소송에서 진 것이 아니라 기업 이미지를 위해 볼리비아 정부와 합의를 본 것이고요. 그에 대한 내막은 사실 이렇습니다.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ICSID에 중재요청을 했을 때 세계 각국의 시민단체와 환경운동가들은 벡텔의 탐욕스런 기업행태를 참지 못하고 봉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먼저 각국의 시민단체와 환경운동가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벡텔 본사로 항의 서신과 이메일을 끊임 없이 보냈습니다. 본사 건물 앞에는 상주하고 있는 시위대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고요. 건물 출입구를 막고 로비까지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벡텔 사무실에는 한 환경운동가가 죽임을 당한 소년(빅토르 우고 다지)의 이름을 내걸었다고 하지요?

42개국 300여 개의 조직은 또 공동으로 ICSID의 상위조직인 세계은행에 볼리비아 사건에 대한 조사를 공개적으로 진행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으며, 초국적기업이 저지르는 횡포의 대명사로서 수십 개의 관련 논문이 발표 되기도 하면서 대표적인 국제스캔들로 확산되기도 했으니 기업 이미지가 악화되는 것을 두려워 한 벡텔이 선택할 수 있었던 방법이라는 것이 바로 볼리비아 정부로부터 2볼리비아노스(약 400원)을 받고 고소를 취하하기로 합의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여당측 대표자로 나온 이재형 고려대교수가 말한 것처럼 벡텔이 ICSID에 중재요청했던 5,000만 달러(또는 2600만 달러)의 소송은 ICSID의 중재에 의해 400원만 받고 쫓겨난 것이 아니라 국제적 망신을 당한 뒤 벡텔이 스스로 볼리비아 정부와 합의를 한 것이며, 그래도 꼴에 지기는 싫었는지 2볼리비아노스이라는 거금(?)을 받아냈던 사건인 것이죠.

이 대목에서 다음 아고라에 게시되어 있는 글 하나를 소개해야 될 것 같습니다. 불탄의 머리와 가슴을 크게 울리게 했던 이 글은 미국 소비자운동의 대표 기수로 널리 알려진 랄프 네이더(Ralph Nader)라는 사람이 FTA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목소리가 실려 있습니다. 참고로 1934년 코네티컷 주에서 출생하여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와 교수를 지냈으며, 1960년대 초부터는 소비자·환경운동에 앞장서 온 인물입니다. [ 미국의 양심이 말하는 한미 FTA의 실체 - 랄프네이더 ]

FTA의 본질에서부터 역사, 내용은 직접 링크된 글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을 터이니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우리나라가 한미 FTA 체결을 통해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랄프 네이더의 목소리를 통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한국의 문화에 대한 한국민 스스로의 통제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무엇을 보고 자랄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문화에 대한 통제를 잃은 사회는 자신감도 잃게 됩니다. 전통 또한 잃어버릴 것입니다. 상상력도 잃게 됩니다.
 
둘째, 여러분이 잃게 되는 것은 농업입니다. 미국은 멕시코에서 했던 일을 한국에서도 재탕하기를 원합니다. 값싼 옥수수가 멕시코에 밀려들어간 이후, 수많은 멕시코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도시로 이농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절망 속에서 미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셋째, 의료보험 서비스에 대한 통제를 여러분들 손에서 빼앗아갈 것입니다. 의료에 대한 통제력이 기업에 집중될 것입니다. 기업들이 의사들을 통제할 것이며, 여러분이 의약품에 대해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지를 제약회사들이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유의 상실’로 합산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주권의 상실입니다. 한국 국민들이 민주주의적 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민주적 개혁은 한국 내에서만 이루려고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동경에 있는 다국적기업들과 상대해야 합니다. ‘권력 중심부’에 우리의 의견을 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됩니다.

만약 정부가 지원하는 의료보험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불공정한 무역조건’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경쟁적인 민간의료보험과 서비스 상품과 시스템을 수출하는 데 제약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이 캐나다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무역분쟁기구가, ‘공교육’ 및 ‘공공의료’는 자유무역을 제한하므로 FTA나 WTO 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과 같이 정부가 지원하는 의료보험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미국의 기업이 자유롭게 진출할 수 없다고 볼 것입니다. 당연히 기업들은 미국 무역대표단을 동원하여 이같은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영역을 개방시키고자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공교육도 공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의 경우 4조 달러 규모의 공교육 예산에 군침을 삼키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학교의 민영화, 기업화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랄프 네이더는 우리나라 정부가 한미 FTA비준 처리를 서두르지 말고, 나아가 속도를 늦추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랄프 네이더가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국민은 앞으로 50년 내지 100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갇힐 지도 모를 일입니다.


미디어오늘


우리의 자녀, 후대의 미래를 담보로 하는 거래일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거래하지 마라"고 하는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논의가 필요합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자료를 공개하고, 정부와 학계,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에게도 미래의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 지 충분히 인지하고 준비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