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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추석 무렵, 지구촌 대부분의 나라는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에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몇몇 나라는 정체되거나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시계는 퇴행 정도가 아닌 일제 강점기로의 역주행을, 정치시계는 1970년대로의 회귀를 목표로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요즘 들어 2013년의 오늘을 살고픈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눈 감고, 귀 닫으면 능히 그렇게 살고 있다는 착각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살기 위해 열어둔 코끝으로 맡아지는 구태의 악취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호흡마저 끊을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닌 다음에야.

불탄의 가족이 맞은 추석 밥상머리 화제는 침묵이었습니다. 구순(九旬)을 앞두고 계신 아버지께서도 예전과는 달리 생선이나 과일 이야기만 잠시 하셨을 뿐, 살림살이나 손주들 학업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으셨습니다. 그래도 지난 설에는 기초노령연금과 같은 박근혜 복지공약에 기대감이라도 나타내셨는데, 이번 추석에는 그마저도 입밖에 내지 않으시더랍니다. 당신께서도 넉넉치 못해 보이는 두 형제의 경제사정과 형님댁 고3짜리 맏손녀가 의식되신 모양입니다. 평소에도 입 무거운 형님이야 언제나 매한가지였습니다만.


출처 - 김용민의 그림마당, 경향신문, 2013.09.09.


최근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친일사관의 역사의식은 충격이란 말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른바 '뉴리아트 교과서'라 불리는 '교학사 역사교과서'와 '윤리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은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할 지경으로서, 마치 일제 강점기가 아니었으면 우리나라의 산업발전도 이뤄질 수 없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집권여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무성이는 '역사교실'이란 정치 모임까지 조직, 이러한 친일사관을 적극 지원하고 나서는 꼴새를 보이고 있다 하니, 이 얼마나 참담하고 절통한 일이란 말입니까.

우리나라의 정치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 1970~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는 판국입니다. 국가권력의 정보기관이 대선에 개입한 것도 모자라 정치 관여와 정국 주도를 꾀하고 있으며, 그러한 국면을 뒤에서 조정하는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유신'과 '공안'을 떠올리게 하는 자들인지라 그 섬뜩함이 더 커질 수밖에요.

지금은 현 정부의 정책에 이견을 보이거나 조금이라도 반발을 하는 양이면, 모두가 종북몰이의 대상이 되는 세상입니다. 국정원 국정감사와 댓글사건 재판과정에서는 국민의 절반이 종북으로 매도되어야 했으며, 뉴라이트 교과서 집필자인 이명희의 입을 통해서는 이 나라 교육계와 언론계의 70%, 예술계의 80%, 출판계의 90%, 학계의 60%, 연예계의 70%가 좌파로 분류되어야 하는 어이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같은 허무맹랑한 주장을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선포한 김무성이 좋아라 박수치고 있으니 이보다 끔찍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최근 조선일보가 제기한 '혼외자' 의혹으로 퇴진할 수밖에 없었던 채동욱 검찰총장의 경우, 청와대 및 국정원의 기획음모론이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출처 - 김용민의 그림마당, 경향신문, 2013.09.16.


조선일보 의혹 보도와 법무부장관의 총장 감찰지시가 맞물린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국정원게이트 수사 과정에서부터 채 총장에 대한 불편함을 공공연하게 내비친 GH정권이었다는 것,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이 국가권력의 개입이 없으면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개인의 신상정보였다는 것,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말실수 등을 종합해 보면 무척이나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고요.

지금의 GH정권 핵심부에는 군 출신 장성들이나 공안검사 출신 배테랑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어디서 그리도 많이 주워 왔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군 출신으로는 남재준 국정원장,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등이 포진되어 있으며, 검사 출신으로는 김기춘 비서실장, 정홍원 국무총리, 황교안 법무장관 등이 애워싸고 있습니다. 모두가 군사독재정권과 연루되어 있는 자들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국민의 70%가 인정하는 이 나라 검찰총장에게 종북총장이라는 색깔과 파렴치한이라는 치욕을 안겨 쫓아내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추석을 맞아 고향길에 나선 귀성객들에게 나눠준 새누리 홍보 정책물(이라 쓰고 '삐라'라고 읽습니다)에서도 70~80년대의 향수(?)는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처럼 살떨리게 만든 정책 홍보물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았기 때문이지요.


출처 - 뉴시스




새누리에게 적으로 규정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장기집권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와 무관한 인물들까지 싸잡아 한통속으로 몰고 가려는 행태가 딱 70~80년대식 공안몰이와 너무나도 닮아 보입니다. 경제민주화 포기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3자회담 결렬에 따른 정치력 실종을 커버하기 위해 부랴부랴 급조한 국면전환용이었지만, 결국 역풍을 우려할 만큼 심각한 상황만 초래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미 수구계층의 연대는 이뤄질대로 이뤄진 상태입니다. 여기에 불탄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수구계층에서 이탈하는 보수층이 앞으로 점점더 많아질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합리적 보수들로서는 도저히 친일사관이 깃든 '뉴라이트 교과서'나 국가권력기관의 전방위적 '채 총장 사퇴 압력'까지 용인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전체주의와 종북몰이가 꽤나 먹혀든 것이 사실입니다만, 앞으론 일제 강점기의 역사의식이나 70~80년대식 유신정치시대가 아닌 2013년 지금의 시대를 살고 싶어하는 불탄과 같은 시민들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정치가 사라지고, 민생이 개차반으로 꼬꾸라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야당 대표를 겁박하는 수단으로 국민 저항 운운하는 GH정권의 수준이라면 그 끝을 볼 날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이젠 조금씩 2013년을 살고, 내일을 기대해도 좋을 만한 대목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