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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추억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지나 봅니다.


국민학교 입학식날, 왼쪽 가슴에 명찰과 함께 손수건을 옷핀으로 꼽고 책보를 두릅니다. 털이 깔린 검정고무신을 신고 나서지만 괜히 엄마의 치마폭에만 있고 싶은 까닭에 입학식 첫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써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눈깔사탕이나 라면땅이라도 하나 사서 쥐어주면 환호성을 내지르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관련 포스트 : 아빠 입학식 때는 왜 손수건을 가슴에 달았어요?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학교를 오가는 시간에 개울에서 또래 아이들과 놀기도 합니다. 신고 다니던 검정고무신은 그때부터 장난감이 됩니다. 고운 모래 위에서는 앞쪽을 꺾어 놓은 한쪽 고무신에 다른 쪽 고무신을 끼워 넣은 멋진 탱크가 되기도 했으며, 두 고무신에 물을 받아 놓으면 개울에서 건져 올린 조그마한 가재나 모래무지의 집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너무나 익숙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손으로 망원경을 만들어 각자의 집을 밝혀보면 어김없이 굴뚝에서는 연기가 올라옵니다. 굴뚝에서 연기가 보이기 시작하면 무작정 뛰어갑니다. 밥때가 다 되어간다는 신호였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조금이라도 늦게 가는 날이면 양껏 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문득 그런 추억이 생각나는 광고를 한편 보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코끝이 찡해집니다.





광고를 보는 내내 지금은 가물가물한 기억 저편의 외할머니가 그립습니다. 코흘리개 어린 손자가 그 조그만 입으로 어떻게 들어갈까 싶을 정도로 크게 뜬 보리밥에 손으로 찢어서 척척 걸쳐주시던 그때의 김치가 입안에서 알알하게 느껴집니다.

밥 숟가락을 놓고 나면 숙제를 해야 하는데 마을에 한대 밖에 없는 흑백텔레비전이 보고 싶어 이장님 댁으로 뛰어갑니다.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마당에 앉아서 열어놓은 방문 너머의 텔레비전을 기웃거리며 조금이라도 더 보려 애를 씁니다. 우리보다 큰 형들은 혹시라도 바람이 불거나 해서 화면이 찍찍거리면 이리저리 담벼락 근처에 있는 외부 안테나를 돌려봅니다. 그러나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텔레비전의 주파수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동네 어르신들께서 한 분씩 방에서 나오십니다. 잠잘 시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때가 되면 또래 아이들도 각자의 집을 향해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는 낮에 밭에서 일하시느라 힘들었던 어깨를 토닥거리며 바느질이며, 투망을 만드시다가 기름으로 밝히는 호롱불을 입으로 바람을 훅 불어 꺼버리십니다.

"할매요, 숙제......"

호롱불 기름이 아까우신 할머니께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시지요. 그러니 노느라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를 못해가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땐 그랬었나 봅니다. 잊혀진다는 것이야 안타깝겠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할 그때는 정말 그랬었나 봅니다. 모든 게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30년이 훌쩍 지나버린 추억이 되었습니다. - 2010.03.06. By 불탄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