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투정만은 아니더라.

새벽별이 채 지기도 전, 그렇게 여명이 밝아지기도 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던 아내. 일이 꼬이려는 지, 아니면 풀리려 그런 것인 지 가게 하나를 맡게 되었다. 먼저 근무지에 낸 사직서는 후임자가 올 때까지 보류된 상태이니 부지불식간 투잡을 뛰게 된 게지.

무엇보다 두 딸이 고생이다. 살림에 서툰 아빠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방과후 특성교육으로 월, 수, 금요일에는 원어민영어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컴퓨터학습을 마치면 할머니댁으로 간다. 이제 14개월을 넘기고 있는 막내 동생과 놀아주기도 하고, 숙제도 하다 보면 저녁이다. 퇴근해 돌아온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고, 막내 동생은 남겨놓은 채 다시 세 부녀는 불꺼진 집으로...

가족가족


두 딸의 엄마를 향한 마음은 편지로 나타난다. 매일같이 종이 편지를 써서 TV위에 올려 놓거나, 큰 딸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서툰 내용의 글이라면 그러려니 할 텐데, 구구절절 심금을 울리는 작문실력(← 깔대기?) 때문에 문자를 확인하거나 종이 편지를 읽게 되는 아내는 그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단다. 뭉클한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그런 느낌이란다.

매일 밤, 재워달라 보채는 두 딸의 성화를 버텨내지 못한 아빠는 때로는 다독거리기도 하지만, 소리를 질러 윽박지를 때도 있다. 그때마다 베란다에서는 낡은 세탁기가 웅웅거리며 딱하다는 듯 소리를 내게 된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세탁기의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 오늘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요일이다. 얼른 문앞에다 얼마 양도 되지 않는 빨간 통을 내다 놓고는 메일과 트위터를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켠다. 기왕에 켜진 컴퓨터인지라 블로그 점검까지 해본다. 감겨오는 눈꺼풀의 무게가 새삼 무겁다는 것을 느끼면서 탈수까지 마친 세탁물을 탁탁 털어 건조대에 넌다.

아이들방에서 이미 잠이 들어있는 두 딸의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고, 손과 발을 만져보기도 한다. 외풍 탓에 혹여 감기라도 들까 싶어 이불을 다시 여며주고 나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음을 실감하게 된다. 자정이 임박한 시간, 아내의 귀가와 씻는 소리, 잠시 달그닥거리던 접시 소리까지 잦아들면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우리집의 모든 빛을 차단하게 된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 정말이지 투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치만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보면 즐기기까지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힘든 생활이 보름 정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 12월만 지나게 되면 아내도 가게 일만 하게 될 테고, 나름 숨통은 트이게 되겠지.

겨우 네댓 시간이 지나면 또 그렇게 하루가 시작될 터이지만, 세 딸의 내일은 그만큼 밝으리란 희망이 있으니 그나마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 함께 보면 좋을 직장인 포스트 :

당신이 직장을 떠나는 이유 - 매일 가슴으로만 사직서 쓰는 남자

전직장이 잘되기를 바라는 까닭

Posted by 불탄